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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쌤 Jul 10. 2020

문맹이었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야기

당신의 공부가 공허하고 의미 없는 이유


허무하게 공부하고 있는 당신에게


1. 약간의 의문



 중학교 역사 시간이었습니다. 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저는 중학교 3년 내내 사회, 역사 과목에서 거의 틀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역사를 좋아하고 잘했습니다. 중학교 역사 시간에 들었던, 아직도 제 뇌리에 남아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함으로써 조선 통치의 기틀을 세웠다.'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법이 국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왜 법을 완성하면 국가의 기틀이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일단 시험에 잘 나오는 것이니 암기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어떤 선생님도 그 의미를 설명해 주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 저도 깊게 탐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삶의 첫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냈습니다.




2. 첫 번째 공허감 - 수능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거친 평범한 사람이라면 모두 '수능'시험은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주변 사람들과 '수능'이야기를 해보면 가장 공감하는 것이 끝나고 난 후의 '공허감'입니다. '수능 공부를 해서 내가 성장한 것 같다.'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인내심이나, 공부하는 방법 등을 깨달아서 인생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는 분도 계시겠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2010년 11월, 수능이 끝나고 나오면서 바라본 하늘에는 노을이 걸려있었습니다.

12년의 학교 교육을 모두 받고, 10대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날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1년 반 동안 이렇게 공부한 거지?"


 열아홉 인생에서 '허무감'과 '공허감'이라는 단어는 10대를 마무리하는 수능날 처음 찾아왔습니다.


나보다 훨씬 열심히 한 친구들도 많았겠지만 1년 반 동안 잠도 아껴가고 버스에서도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버텨온 시간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새벽 6시면 나를 깨워 잠도 깨지 않는 나를 위해 아침을 차려주고,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주신 어머니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본인을 희생했을까요?


공부를 하면서는 느끼지도 못했던 허무함과 공허함, 어린 나이에 저는 제대로 그 감정을 느끼지도 못했고 대처하지도 못했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허무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가 돌아오던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오던 길에  교회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매일 집에 갈 때 보던 교회 십자가에는 은은한 달이 걸려있었습니다. 

달은 십자가에서 떨어질 듯 위태롭게 걸려있었습니다. 

그날 보았던 달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적이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친구 관계가 나쁜 것도 아닙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저는 왜 그토록 허무했던 걸까요?

그렇게 저는 답을 찾지 못한 채 허무함을 가지고 재수를 했고, 교대에 입학했습니다.


3. 두 번째 공허감 - 임용고시


대학 입학 후 3년간 신나게 즐겼습니다. 그리고 4학년, 저는 어느새 임고생(임용고시 준비생)이 되어있더군요.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인터넷 강의를 들어가며 겨울방학부터 열심히 공부했죠. 공부를 시작한 지 1달 정도 지난 후에 갑자기 수능 시험이 끝나고 하늘을 보며 느꼈던 허무감이 밀려왔습니다.




 임용 때 느낀 허무함은 수능 시험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인터넷 강의에서 밑줄 쳐준 것을 노트에 옮겨 적고, 외우고, 복습하고, 또 복습하고... 하루하루의 반복.



대학에 와서도 나는 무의미하게 공부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교수 학습 방법을 달달 외우던 어느 날,



미술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표현 용구와 재료, 표현 방법을 탐색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이 한 줄을 읽고 외우면서 저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선생님을 뽑는 시험인데 공부하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이 받아쓰기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저는 15년간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루 종일 공부는 하지 않고, 내가 공부하면서 느끼는 이 허무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랬습니다.



"나는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만 읽고 있다. "




네, 수능 때 느껴졌던 그 허무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아는 것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앵무새, 글씨 따라 쓰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선생님과 어른들, 교육제도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교육받았겠지요.


 다만, 내가 중학교 때 '법이 국가에 가지는 의미를 알려고 노력했다면 훨씬 더 빨리 깨달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또한,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것을 알려주던 어른 한 명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있네요.



4. 나는 실질적 문맹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문자 교육을 받았고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엄청나게 낮은 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독해 능력은 '글자'읽는 능력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자의 의미를 곱씹어 보고 흡수할 시간도 없이, 그저 인쇄된 글자를 외우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성냥'이라는 단어를 읽으셨을 때, 

머릿속에 '성냥'이라는 글자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성냥의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성냥 팔이 소녀'라는 글자를 읽으면, 

글자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성냥을 팔고 있는 소녀가 떠오르시나요?


'한 겨울, 성냥 팔이 소녀는 추위에 떨며 성냥을 팔고 있었다.' 

이 문장을 읽고,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시죠? 


네, 저는 머릿속에 글자만 떠다니던 실질적인 문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25살에 교사가 되는 과정에서 처음 느꼈고요. 


더 나아가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서도 실질적 문맹이 분명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5. 당신의 공부가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


 당신이 공부에서 의미 없고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의미 없게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그저 시험 성적, 합격만을 목표로 공부한다면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막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혼자 걷는 것과 같습니다. 


 학창 시절 그렇게 공부해왔던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의미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쓴 책 리뷰 중 '무지한 스승'에서 '지적 해방'에 관해 다루었습니다. 평생을 선생님의 말씀, 강사의 말, 교과서에 있는 설명만 받아 적으면서 살던 저는 지적 해방은커녕 지적으로 성장하지도 못했습니다. 내가 실질적 문맹임을 깨달았을 때, 저의 공부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25살에 처음으로 문장을 읽고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죠.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평생에 처음 해보는 시도였거든요. 한 달 정도 연습하니, 교수 학습 방법을 읽으면서 수업하는 모습이 상상되더군요. 수업하는 장면이 떠오르니까,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감이 잡혔습니다.


 그 이후, 교육과정 문서는 더 이상 글자만 빼곡한 재미없는 문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길러야 하는가, 그러려면 어떤 과목을, 어떻게, 얼마나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긴 종이로 바뀌었습니다. 교육과정 문서는 하나의 거대한 담론이었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예시가 교과서였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후에 제가 공부한 것은 단순히 교과서를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가', '인간 사고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질적 문맹에서 벗어나기, 이것만 깨달아도 여러분의 시야는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6. 더 이상 의미 없이 공부하지 말자.


그저  내용을 달달 외우고, 또 외우고, 시험 보고, 또 외우고.... 이런 공부가 의미 없다는 건 이제 느끼셨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는 성장할 수 있고, 의미 있게 공부할 수 있을까요?


  첫째,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의미를 구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내용과 목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이어야 합니다. 저에게서도 의미를 구하려 하지 마세요. 저는 그럴 능력도 없을뿐더러, 본인의 치열한 내적 투쟁이 없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둘째, 학습에 대한 학습을 하세요. 공부하는 내용만 암기하고, 점수만 높이려는 공부는 삶에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어떻게 했을 때 더 잘 외워지고, 어떤 방식으로 했을 때 더 집중이 잘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끊임없이 수정, 적용해야 합니다.


 셋째, 인간의 본질적인 사고를 생각하세요. 아무리 복잡한 지식이라도 의사소통, 패턴 파악, 비교하기, 이름 짓기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사고를 벗어나기 힘듭니다. 한글을 만든 집현전의 학자들과 우리의 지적 능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사고는 같으나, 어떤 질문과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은 결정됩니다. 


 제가 제시한 세 가지가 정답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정답을 내려줄 능력도 되지 않고, 정답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글을 읽고 한 사람이라도 허무한 공부의 질식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나는 학생들 그리고 글로 만나는 독자들과 함께 삶의 의미, 공부의 의미를 탐구하고 의미 있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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