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가 될 책인가, 독이 될 책인가.
작가 사진 및 책표지 출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YES24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저자야마구치 슈출판다산초당발매2019.01.21.
읽은 지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갑자기 생각나서 쓰는 리뷰.
취미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책 내용
50가지의 유명한 철학자의 이론을 보여주며 실제 삶 속에서
그 개념들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다양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면에서 좋은 입문서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악서(惡書)가 될 수 있으니 매우 주의해서 접근해야 한다.
현대 인류에게 철학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철학은 확실히 무기가 될 수 있다. 철학을 정말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 대상과 현상에 대해 자신의 사고를 극한으로까지 밀어붙이는 사고 활동. '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철학은 삶에서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먼저 무기(武器)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무기의 국어사전상 뜻은 2가지이다.
전쟁이나 싸움에 사용되는 무기.
어떤 일을 하거나 이룰 때 중요한 수단이나 도구.
사전상으로 봤을 때 무기의 두 가지 뜻은 어떤 물질적인 도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기를 물질적인 도구만으로 생각하면 절대 철학을 삶의 무기로 사용할 수 없다.
무기에 대한 물리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다면 철학, 즉 사고능력은 추상적이지만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있다.
즉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철학적인 사고가 어떤 일을 하거나 이뤄낼 때 중요한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있다
는 말이다.
분명히 철학은 자신의 무기, 장점이 되어서 삶의 목표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철학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 추상적인 내용이다. 또한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은 거의 의학용어나 법률용어처럼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들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철학은 그저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는 오해에 쌓여있다. '낡고 지루한 것', '비현실적인 것','보통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것', '어려운 것'.현실에서는 이런 단어들이 철학과 어울린다. 이런 성격을 가진 철학이 어떻게 현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사람들은 철학을 도외시하면서 모순적으로 동경하는 감정을 가진다. 철학 하는 자세는 뭔가 멋있어 보이고, 철학자의 이론을 알고 있으면 지식인처럼 보이고 격조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조금만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면 뭔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 같다. 이는 철학적 사고가 현실에서도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존과 문화의 번영에 가장 핵심적인 능력은 '사고능력', '인지능력','지적 능력'( 이후 사고능력으로 칭함)이다. 기억력, 학습능력, 창의력, 추상적 사고 등이 모두 이 능력에서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뇌 용량이 점점 커지면서 사고 능력은 점점 높아졌다. 높아진 사고능력이 인류를 살아남게 한 것이다.
즉, 사고하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물리적인 힘보다는 사고능력이 훨씬 더 큰 무기다. 당신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물리적 힘을 기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지적인 학습을 하겠는가?
철학 = 개념?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철학이 무기가 되지는 않는다.
혹시 이 책을 통해서 철학자의 개념을 안다고 해서 철학을 삶의 무기로 사용할 수는 없다.
철학은 오직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무기가 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철학적 사고란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서 본질을 파악하고, 가장 알맞은 선(善)과 중용에 따를 수 있도록 판단하는 능력이다. 여기에서 어떤 대상이 자신을 칭한다면 '반성적 사고'가 된다. 또한 우주의 탄생에 대해 본질을 파악한다면 신의 존재에 의지하는 신학자가 되고, 경험적이며 이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탐구한다면 물리학자가 된다. 시각에 따른 철학적 사고를 통해 나온 결론들을 모두 엮으면 '학문'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학문의 계통을 살펴보면 철학적 사고, 형이상학은 제1학문이라고 불린다. 철학적 사고를 통해 모든 학문은 연결될 수 있고, 통합적인 인식이 가능하다. 모든 것이 파편으로 나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이 능력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는 '철학 = 철학적 개념'이라는 오해가 만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적 개념을 알고 있으면 철학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개념은 기본적으로 철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이 책에서 니체의 '르상티망'이란 개념을 읽은 후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당신은
'아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이 있으니까 저 사람의 숨은 심리를 찾아봐야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 개념이 삶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어느 자리에 가서 '르상티망'이라는 단어의 맞춤법을 아는 것뿐, 그 개념을 이끌어낸 니체의 사고과정은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김밥'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보다 더 못한 일이다. 최소한 '김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김밥'이라는 글자뿐만 아니라 '김밥'의 이미지까지 함께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개념은 철학자들의 치열한 지적 사투의 결과물이며 이 결과물을 제대로 느끼지(이해하지가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 못한다면 철학은 우리 삶에서 무기가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거짓말과 허영이 되어 오히려 사고의 퇴보가 일어날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이 책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서적은 독서(毒書)가 된다.
따라서 철학이 우리 삶의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개념의 배경과 철학자의 사고과정 그 자체를 따라가는 철학적 사고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것이 반복되고 쌓이다 보면 우리는 자연히 창의적, 비판적, 주관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바로 그 철학적 사고를 무기로 휘두를 수 있다.
철학의 본질은 철학자 이름과 개념 알기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반성하며 고쳐나가는 고차원적 사고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마치 야구선수가 한 번의 안타를 위해 수없이 많은 배팅 연습을 하듯 우리는 항상 철학적 사고를 익혔을 때에만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고가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적 사고는 책으로만 훈련할 수 있을까?
철학적 사고를 훈련하기 위해서 철학서적을 읽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철학적 사고를 익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도 철학적 사고를 훈련해나갈 수 있다.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대상과 현상들에 대해서 깊이 사고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그런 예시이다. 오히려 자신의 감각을 통해 철학적 사고를 익혀나가는 것이 책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철학을 하고 싶다면, 철학자와 그 개념에 파묻히는 것보다 고개를 들고, 맑은 공기를 크게 마시며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응시하자.
철학을 하고 싶다면 철학자를 멀리하자.
요약 및 마무리
요약하자면 철학은 어떤 개념을 알고 있다고 삶의 무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철학자의 개념을 망각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순간 이후에만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이 글은 나 자신을 반성하며 쓰는 글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책을 읽고,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언제나 그 철학자의 안에 갇혀있음을 느낀다. 그런 느낌이 들 때면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어지럽다. 언제서야 나는 다른 사람을 극복할 수 있을까.
오늘도 좀 더 '나의 생각', '나의 철학'이라는 무기를 담금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