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세포의 이식은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되는 치료 방법이다.
일단 조혈모세포는 피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세포 기관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혈액이 만들어진다.
조혈모세포 이식에 혈액형은 상관이 없다. 면역항체가 일치해야만 이식을 받을 수 있는데,
그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형제/자매의 경우 25%의 확률로 100% 일치하고, 부모의 경우 무조건 50% 일치다.
그 외의 타인 공여자, 즉 아예 남남인 관계에서는 1/20000의 확률로 100% 일치한다.
조혈모세포 이식 방법은 크게 자가이식과 타인 이식이 있다.
자가 이식은 관해가 획득된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냉동시켜두었다가 본인에게 이식하는 방법이다.
이식 후 부작용은 적지만, 재발의 확률이 다소 높다.
타인 이식은 100% 타인 이식, 50%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한다.
여기에서 타인이란 위에 말한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아예 모르는 사람 또는 제대혈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것이다.
특히 제대혈 이식은 아기의 탯줄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하여 이식하는 방법이다.
우선순위는 형제/자매 100% 이식, 타인 100% 이식, 제대혈 이식, 가족 50% 이식이다.
환자 상태와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는 제대혈을 통해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기로 했다.
이식의 첫 단계는 이식 전 처치이다.
이때는 내 몸에 있는 내 조혈모세포를 완전 박멸시킨다.
이를 위해 저강도 전신 방사선 치료, 매우 독한 항암치료 등을 실시한다.
치료의 후유증은 사람마다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내 치료 스케줄은 방사선 치료로 시작되었다.
4일 동아 하루 2번, 총 8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처음 치료받은 날부터 정말 쉴 새 없는 구토가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란 걸 확실히 깨달았다.
그 후 항암치료가 계속되었고,
내 몸은 의지도 영혼도 없이 그냥 침대에 누워있었다.
병실 청소 시간에도 나갈 기력이 없어 하루 종일 잠만 잤고,
정말 힘들다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아무것도 못했다.
특히나 내가 받은 제대혈 이식은 수치가 회복되기까지 최소 5~6주 이상 이 상태로
버텨내야 한다.
이미 내 몸에 있는 모든 골수 세포는 다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 감염이라도 되면
매우 치명적이다.
항암이 다 끝난 후, 드디어 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손바닥만 한 팩 2개에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있는 제대혈이 담겨왔다.
이식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히크만 카테터를 통해 가져온 제대혈을 수혈하듯이 넣으면 된다.
문제는 이식 다음 날부터였다.
기본적으로 37도의 열이 항상 있었다. 열이 난다는 건 염증이나 다른 신호 일수도 있어서 매우 민감했다.
또한 물에서 비린내가 너무 많이 나서 마시지도 못했으며,
쌀에서는 모래 씹는 맛이 나더니 결국 아무것도 먹지도 못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열량을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했고,
그저 눈 감고 버텨보는 게 일상이었다.
손, 발 끝부분은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으로 엄청난 신경통에 몸부림쳤다.
너무 뜨겁고 따가워서 아이스팩을 항상 손에 대고 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음료수를 먹고 싶어서 뚜껑을 따다간 손톱이 빠져버릴 지경이었다.
며칠이 지나니 피부에 엄청난 붉은 반점이 생기고,
미쳐버릴 정도로 가려웠다.
희망이 있는 한,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다.
이식 전에는 희망이 있었다.
이식을 마치면, 내가 다시 회복해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식을 받자마자 나는 희망을 잃었다.
내가 하는 낙관적인 생각은,
항상
'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였다.
정말이지, 내가 나가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식을 받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훨씬 지배적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이식을 받고 나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뒤따르고.
몸도 힘든데,
아니 몸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서일까?
멘털도 무너져 버렸다.
눈물을 흘리면 머리가 아파서 참다가도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이 와중에 제일 힘든 건 먼저 퇴원하는 다른 환자들을 보내는 일이었다.
내가 이식받은 제대혈은 입원 기간이 최소 5~6주인데 반하여,
타인 이식을 받은 환우분들은 3주면 수치가 회복되어 퇴원했다.
나보다 늦게 이식을 받은 분들이 어느새 수치가 회복되어 나가시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있는 게 버티기가 어려웠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아프고, 불쌍하고, 여기서 못 나갈 것만 같은
그런 패배의식이 나를 짓눌렀고, 나를 더 약하게 했다.
이식 4주 차를 넘어 5주 차가 되자
수치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갑자기 퇴원 이야기가 나왔다.
이식 5주 차, 주치의 교수님께서 퇴원을 하자고 하셨다.
" 정말 퇴원해서 집에 가도 될까요? "
이때 나는 퇴원을 하기 싫었다.
아니 너무 무서웠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일찍 퇴원 오더가 내려졌고,
집에 가서 지낸다는 불안감이 퇴원의 기쁨을 압도할 만큼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걱정 말고 퇴원해도 된다며, 퇴원 오더를 내리셨다.
퇴원 전 날밤,
나는 지금까지 입원했던 기간 중 가장 서럽게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언제 다시 아파서 이 병원에 돌아올까.
퇴원해서 집에 가는 게 아니라,
휴가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군인의 마음이었다.
병동 담당의는 내게 용기를 줬다.
" 제가 본 제대혈 이식 환자분 중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되셔서 퇴원하는 거예요.
이렇게 빨리 퇴원하실지 정말 몰랐어요. 그만큼 회복이 잘 되었다는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
퇴원하시면 됩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과 친절한 말에 또 울어버렸다.
무엇보다 고생 많았다는 그 말이 나를 울린 것 같다.
시간이 되어 간호사님들께도 모두 인사를 드리고,
아빠, 동생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