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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쌤 Dec 11. 2022

2023 일기장을 샀다.

다시 나아갈 수 있을까.


 제목 그대로,

얼마 전에 2023년도 일기장과 플래너를 샀다.


(좌) 플래너: Moleskine weekly planner, (우) 일기장: 양지 Usually 25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지, 

평일 낮인데도 다이어리, 플래너 코너에 사람들이 붐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기장, 플래너 구매가 

나에게는 약간의 주저함을 부수고 나오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사실 주변에 내가 가진 생각이나 사상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이는 내가 특별하거나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세상과 단절된다는 느낌과 스스로를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2015년 임용을 시작하던 해부터 마음을 정리하려는 목적으로 꾸준히 일기장을 써왔다. 


어느새 나이를 많이 먹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정리가 되었고, 

그 글들을 편집해서 블로그에 올려왔다.



 글을 통해서 그나마 내가 가진 시각과 사상을 

글로 그려내면 사람들은 이해해 주기 시작한다는 걸 느꼈다.


 연말이 되면 새로운 일기장을 사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쓰는 일기들이 내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했다.


 내 삶에 정리가 필요할 때마다 나는 일기장을 꺼냈다.

보잘것없는 내 사유들은 모든 시공간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꾸준한 일기 쓰기를 통해서 나는 한 가지 꿈이 생겼다.


 나는 글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나는 그림을 지독하게도 못 그린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만 되면 항상 장난만 치거나 

거의 포기한 채 대충해서 과제를 제출하는 학생이었다.


 대신 물감이 아니라 글로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눈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은 못 그리지만 

글을 통해서 내 머릿속과 마음에 존재하는 사상들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마치 추상화처럼 현상과 사유를 가장 원초적으로 돌려놓는 그 사유 자체와

그 사유를 느끼는 감정들을 글로 그려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막연하게 작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



방지턱



 그러나 2020년 말 발병 이후 2년간

나는 글로 그림 그리기를, 추상화 그리기를 포기했다.


 2021년은 항암치료 및 이식으로,

2022년은 회복하면서 일기와 플래너를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2021년은 드문드문 병상 기록만 남아있는 정도이고,

2022년은 아예 일기장도 사지 않았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사유를 정리하는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 2차 항암 때 말하기, 읽기, 쓰기 능력이 완전히 상실되었을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말을 못 해서, 물 좀 가져다 달라고 쓰려고 했던 글자..?



 밤에 나를 위로하러 찾아와주신 간호사님 손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PTSD



 얼마 전에 복직 원서를 내고 왔다.

교수님께서도 별말 없이 소견서를 써주셨다.

내가 많이 건강해졌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나는 PTSD로 그 상황이 문득 떠오르는 걸 

최대한 참아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나는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환우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2023년에는 부디 이 기억과 불안을 극복하고

다시 일기장에 글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끝으로

나를 비롯한 모든 환우분들, 

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


 항상 다짐하는 바처럼

모든 것을 긍정하지만, 조금의 낙관을 가지고 살아가려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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