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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쌤 Dec 20. 2022

[북 리뷰] 초역 니체의 말, 마흔에 읽는 니체

니체 입문서로는 읽지 마세요.


 날이 은근히 따뜻하여 오랜만에 산책에 나섰다.

집 근처 서점에 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다시 서양철학 도서 진열대로 가보았다.

지난번 서점 리모델링을 하더니 책이 꽤나 바뀌어있었다.


 조금 놀란 점은 니체 관련 도서가 가장 좋은 자리에 쫙 진열되어 있던 점.

게다가 초역 니체의 말과 마흔에 읽는 니체 두 권은 베스트셀러였다.


 무슨 내용인지 대충 훑어볼까 하다가,

도저히 읽기가 힘들어서 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이 두 권은 니체 관련 도서 중 최악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은 나보다 니체뿐 아니라 서양철학 전반을 이해하고 있는

훌륭하신 분들이라 믿는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거부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일단, 니체에 대해 잘 아는 작가들이 니체의 일부만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문장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게 전달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한 권은 니체의 말을 그가 그토록 배척하던 성경처럼 써두었다.

다른 한 권은 마치 니체를 이용해서 자기 계발서를 쓴 것 같다.


 아래에 이 책들을 고를 때 신중해야 할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겠다.



이러한 책은 니체의 입문서가 아니다.


  니체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철학자이다.

그의 아포리즘과 강한 문체는 섹시하다.

동시에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철학자이다.


 니체의 아포리즘은 그 문장 또한 매우 복잡하고 추상적이기에 

그 자체를 읽는 것만으로도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포리즘에는 서양 철학사와 도덕, 종교 등 

방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니체의 삶에 대한 기본 지식, 철학사와 시대상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없다면 그저 읽는 것으로 끝난다.


 니체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그가 가장 우려한 작가(니체 자신)와 독자의 단절이다.

그동안 니체에게 향한 많은 오해와 왜곡은

이렇게 니체에 대한 기본 정보 없이 편집된 문장 소개 위주의 

단절된 소통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니체는 쉽게 읽히면 안 된다.



 만약 이 책들을 읽을 것이라면,

일단 니체의 전기 한 권 정도는 읽고 와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 문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공부할 각오는 하고 읽어야 된다.



 이 책들은 니체에 쉽게 입문하는 도서가 절대 아니며,

니체에 입문을 쉽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만약 성숙한 니체 독자라면,

가끔 떠오르는 사색의 결과에 인용할 구절을 찾는다면

편리한 '니체 사전'이 될 수도 있다.



니체에게 기대는 순간, 니체가 말한 대로 살지 못한다.


 위에 소개한 두 권의 책은, 마치 지치고 힘든 독자들이 

니체의 잠언들에서 어떤 위로나 삶의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며 쓴 것 같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일반적인 독자들은 쉽고 간편하면서도,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책들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니체는 위로를 전하는 이가 아니다.

니체는 성경이 아니다.

니체는 약자를 동정하지 않는다.


 니체는 자신의 독자가 진정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에 홀로서기를 바라는 철학자다.

이해가 쉽고, 듣기 좋은 말을 통해서 독자를 위로할 마음은 없다.


 지치고 힘든 세상, 니체를 통해 위로받으려는 마음에서 

두 책을 고르지는 말아야 한다.


 만약, 니체와 싸울 생각을 한다면 

니체는 당신을 어느 정도는 독자이자, 친구가 될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가 니체의 적수가 될 수 없다면,

혹은 적수가 될 정도의 노력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니체와 친해지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골랐을 독자들,

성실하게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들은

제발 니체의 잠언을 통해 힘든 현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길 바란다.


 이 책과 니체를 제대로  읽었다면,

현실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길 바라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그냥 니체를 떠나는 게 맞다.



니체의 입문서로 추천하는 책, 강의



 1. 유튜브 강의

 이진우 교수님 니체 강의

니체 철학의 전반적 이해를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백승영 교수님 니체 강의

 위의 이진우 교수님보다는 좀 더 자세하고 어렵게 해설하시는 강의.


 2. 책


 - 니체 전기 => 

 유명세에 이끌려 니체의 저작을 바로 읽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유년기, 쇼펜하우어와의 만남, 바그너와의 만남 등 그의 삶 자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니체의 전기는 여러 가지 편지, 야화 등 자료가 담겨있어 니체에 좀 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니체가 비판한 철학자들, 당시의 문화상들을 연결 지어서 배경지식이 쌓인다.

그래서 나처럼 비전공자가 니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니체 전기를 먼저 읽는 것이 좋다.


니체 전기는 내가 읽은 3명의 작가만 비교하여 소개하도록 하겠다. 

왼쪽부터 홀링 데일, 자프란스키, 수 프리도의 니체 전기

*J. 홀링 데일 (1999) :  니체와 아버지의 유대감, 유년기가 좀 더 부각되었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 등이 나와서 다른 책들보다는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뤼디거 자프란스키(2000) : 목차 자체가 니체의 저작 순이다. 그래서 니체의 사상들이 태어나는 앞, 뒤의 맥락을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수 프리도 (2018) : 내가 아는 한 가장 최근에 나온 전기이다. 니체와 바그너와의 실제 관계를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 니체 본인의 저작: 이 사람을 보라, 니체 대 바그너, 바그너의 경우, 교육자로서 쇼펜하우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니체 사상을 정리한 책:

*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백승영): 엄청나게 두껍다. 니체 철학의 핵심인 '긍정'을 필두로 니체의 전반적인 철학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둔 책이다. 최근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아포리즘을 분석하여 정리한 책도 출간하셨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본다면 비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이런 걸 추천한다고 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나는 전공자도 아니고 엄청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비전공자가 아닌 독자의 경험이므로 더욱 실제적인 추천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매우 매력적인 철학자이다.

다만, 니체를 만나기 전에단순한 위안보다는 아주 긴 호흡으로 자신을 찾아 나설 준비를 하고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생각에 이 두 책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책을 읽음으로서 니체의 전기와 저작들을 직접 읽어보게 만드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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