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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쌤 Jul 21. 2023

[북 리뷰] 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대하여

고등 교육기관의 속물화, 양과 질에 대하여.





 






 시간이 좀 지났지만 뉴스에 '지방대의 위기'에 대해 자주 나오고 있다.

대부분 뉴스에서 '지방대의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것, 수도권 선호 현상이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지방대가 소멸하는 것은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역할, 즉 고등교육과 교양교육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대하여'라는 강연에서 고등 교육 기관의 숫자와 속물화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현재 우리나라에 난립한 여러 대학들을 살펴보고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 반성해 보는 시야를 제공할 수 있다.




교육 문제 - 1, 고등교육의 속물화



  전편에서 살펴보았듯 고등 교육의 본질은 '진정한 교양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니체가 보기에 당시의 고등 교육은 속물화되어 있었다.


 이미 고등 교육은 인류의 문화 전승 및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

관료나 전문직을 위한 관문일 뿐이었다.

  학생들은 문화의 창조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고등교육 기관에 들어갔다. 입학부터 고등 교육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채로 말이다.


 고등교육은 기초교육처럼 당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고등 교육 없이도 직업을 얻고, 결혼을 하고 생존할 수 있다. 

고등교육이 개인이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을 보장하는 교육, 즉 속물화 교육이 될수록 고등교육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교육'으로 평등화, 민주화, 공리주의 교육이 되어갔다.





 공리를 교육의 목표로 잡는다면, 교육의 진정한 과제는 시대의 추세에 밝은 사람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으로 인해 교등 교육의 본질인 진정한 교양인을 양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고등 교육이 본질을 잃어가는 순간, 인간의 문화는 더욱 타락하고, 하강하고, 하향평준화되었다.

16세기 르네상스를 통해 비로소 다시금 되살아난 찬란했던 그리스 문화는 자본주의에 잠식된 것이다.




 니체는 이런 속물주의 현상에 근거하여 교육 현실을 비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정한 대립이란 교양 기관과 생존경쟁의 기관이라네.

니체 전집, <유고 1870~73년>, 251p




  이러한 현상은 현재 우리 교육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본 교육은 중학교까지이다. 사실상 고등학교 교육,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생존에 큰 지장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고등교육, 대학교육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직업을 얻지 못하고, 생존할 수 없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고등 교육은 '생존을 위한 투쟁' 중 하나의 관문이 되어버렸다. 




모든 교육, 그 과정의 종점에 가서 하나의 관직이나 생계 수단을 약속하는 교육은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에서 교양을 위한 교육은 아니네

니체 전집, <유고 1870~73년>, 248p






 그 결과 우리의 고등 교육과 대학 교육은 그 본질을 잃은지 오래이고, 그저 직업 사관학교의 위치로 전락했다.


교사의 수업은 당연히 '수능'위주로, 교수의 수업은 당연히 '취업' 위주로 전락하게 된다. 대학을 광고할 때도 항상 "취업률"을 내세우는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 자명하다.




이 기관들이 아무리 관료나 상인, 장교나 도매상 또는 농부나 의사, 기술자를 교육한다고 약속한다 해도, 그것은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들일 뿐이야.

니체 전집, <유고 1870~73년>, 249p






 더 큰 문제는 대학의 이런 기조들과 이렇게 형성된 국민 의식이 중,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의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대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가 '대학'을 위한 하나의 거쳐가는 과정이 되어버렸다. 이는 결국 어떤 '직업'을 쟁취하기 위한 속물 교육, 생존 투쟁이 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생존투쟁의 교육 과정에서 우리는 파편화(좋은 말로 전문화) 되는 교육들을 평생 받아오며 인간의 총체성이나 초월적 인식 등은 모두 현학적이고 쓸모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토대에서 진정으로 교양 있는 사람을 육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하면 교육계에서 쉽게 건들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과 관련한 문제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산이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교육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모아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교육 문제 2 - 고등교육 기관의 양과 질 대립




 니체는 고등 교육 기관의 양과 질의 대립을 언급한다. 그는 고등 교육기관의 양이 많아질수록 질은 떨어진다고 하였다. 니체는 고등 교육기관의 질을 더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고등 교육기관은 많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오케스트라의 예를 든다.

우리에게 음악의 모든 것을 전달하고 빠져들 수 있게 해주는 지휘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인간은 음악에 진정으로 몰두할 수 없다.

 우리가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천재적인 지휘자, 진정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니체가 보았을 때, 고등교육은 이렇게 천재적인 한 명의 지휘자, 지도자를 양성해야 하는 교육이다.


 그러나 이런 천재적 지휘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천재들의 업적이라는 우산 속에서 문화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위의 두 이야기가 비민주적/독단적이고 엘리트주의라며 껄끄럽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듣기 좋은 말을 할 능력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니체의 말을 잘 생각해 보면 절대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고등 교육기관 (고등학교와 대학교) 확대를 보면 그가 말한 점이 이해가 될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대학교를 생각해 보자.

버스나 인터넷 등으로 '취업률 1위, 합격 1위' 등으로 자신들의 기관을 홍보하는 것을 보면

이게 대학교 광고인지 취업 학원 광고인지 헷갈린다.

심지어는 유명 대학들도 누가 어디에 취업했는지 현수막으로 걸어두고 홍보할 정도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대학뿐이 아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입시가 끝나면 소위 SKY 대학교를 얼마나 보냈는지가 학교의 성적표가 된다. 


 우리 역사에 좋은 예가 있다.


조선 중기 좋은 뜻으로 만들었던 서원이 각종 지원을 받으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자 엄청난 병페가 생겼다.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은 후  철원을 철폐했다 해서 우리는 그를 욕하지 않는다.

현재 여러 지역에 난무하는 '대학'들을 보면 무분별하게 지어진 서원이 떠오르지 않는가.





 공리주의적, 민주적, 평등의 관점에서 고등 교육의 숫자를 줄이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고등 교육 기관을 줄이는 것은 좋은 직업(편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얻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출발선을 다르게 하는 불평등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주장에는 시작부터 오류가 있다. 고등 교육 수료가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고등 교육 수료가 더 좋은 대우와 연봉을 받고, 사회의 상위 계층을 차지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력이 삶의 질과 연봉 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결과와 원인을 혼동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더 현실적으로 대학의 수를 늘려서 고등 교육의 기회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직업을 나누어 받는 것은 아니다. 냉정히 말해서 고등 교육 기관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대학을 나왔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로 시선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는 더 극심한 엘리트주의와 경쟁을 야기한다. 지금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는 학력 인플레이션과 이로 인한 제조업, 중소기업 등의 인력 부족 문제는 모두 예견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흔히 이런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직업의 평등도 중시한다. 하지만 동시에 더 편한 직업, 사회적으로 더 대우받는 직업을 원한다. 이는 스스로 차별하는 꼴이 아닌가? 민주주의와 평등주의가 들어온 교육의 이념들, 수시와 학동, 입학 사정관 등의 제도는 경쟁을 끝내고 평등함을 가져왔는가? 




 교육의 제도에 있어서 완벽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한 맹목적 신뢰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음으로 정신의 조직 체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민주주의와 평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정신의 조직 체계가 매우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보았을 때 천재와 우리의 능력은 분명 다르다. 구체적으로 나와 메시는 둘 다 축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메시와 똑같이 축구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정신의 조직 체계가 민주주의와 와 평등을 훼손하고 엘리트주의와 독재주의를 옹호하며 조장한다고 말할 것이다. 천재는 당연히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며, 그가 뛰어나다고 해서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문화를 이끌어가는 천재들과 동일하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에게 복종하고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천재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일 뿐이다.


  에를 들어 아까 말한 천재적 지휘자를 아이돌이나 최상위권의 운동선수들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과 퍼포먼스에 경이를 표한다.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그늘에 황홀함과 몰입을 느끼고, 그들을 응원하며 추종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의 노예이거나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천재들이 우리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길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거나 싫증 나면 그 문화를 소비하거나 향유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광복과 6.25 전쟁 이후 민주주의와 산업화, IMF까지 겪으며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다. 


유명무실한 지방대학교는 그 과정에 쌓여온 노폐물 중 하나이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안고 갈 수는 없는 현상이다. 고름이 차오르면 째 내어야 하고, 부패가 심하다면 도려내야 한다.



 이번 글에서 다룬 니체의 이야기는 우리가 대학 교육, 고등 교육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준다. 우리는 고등 교육의 의미를 알고 받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북 리뷰] 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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