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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Aug 27. 2022

우물

2020년 12월 29일의 기록

온라인으로 학내 상담 센터에 상담 신청을 하고 약 3주 만에 방문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센터까지 가는 길은 온통 잿빛이었는데 상담실 안은 알록달록하고 따스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낯선 인상을 풍겼다. 한편에선 가습기가 축축한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고 약하게 난방이 돌아가고 있었다. 탁자 위엔 심리와 관련된 책 몇 권과 티슈, 간식 그릇이 놓여 있었고 커다란 물통이 거꾸로 꽂힌 정수기에선 이따금 울컥, 하고 물소리가 났다.


나에게 배정된 상담사는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렇게 때문에 나와의 상담은 모두 기록되고 녹음될 것이며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고지했다. 이에 동의하겠냐는 물음에 어렴풋이 아 그래서 무료로 해준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동의하겠다고 하자 상담에 앞서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라고 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상담사가 재배정될 수 있으며, 상담은 그때부터 시작한다는 안내와 함께 검사지를 받아 든 나는 검사를 위해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사방이 방음재로 꽉 막힌, 흡사 녹음실 같은 상담실이었다. 귀가 먹먹해지는 듯한 고요 속에서 나는 검사지를 작성해나갔다. 객관식으로 된 문항은 큰 고민 없이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일명 ‘문장 완성검사’라고 불리는, 문장을 완성하는 형태의 문항은 꽤 시간이 걸렸다. 검사에는 한 시간여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가자마자 상담을 바로 시작하게 될 줄 알았던 나는 적잖이 실망한 채 상담 센터를 나섰다.


그리고 일주일 후 방문한 상담 센터에서 나는 예의 그 상담사를 다시 만났다. 나의 상담사로 완전히 배정되었다고 한다. 또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고, 두 번째 방문으로 조금 여유가 생긴 나는 상담사의 방을 쭉 둘러보았다. 뜻밖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인 뜨개 소품이 책장에 장식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내가 사고 싶었던 작품인데, 여기에 와 있었네요. 나는 웃으며 말했고, 조금 긴장하고 있던 마음을 놓았다.


지금 가장 고민되는 게 뭔지, 무슨 이유로 상담센터를 방문했는지 상담사는 물었다. 당시엔 고민이랄 게 크게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모든 건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고, 내가 하는 모든 고민은 결국 나의 게으름과 나약한 정신 탓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은 없지만, 나를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왔다고 나는 이야기했다.


그 이후 상담은 서너 번 정도 이루어졌다. 일주일, 혹은 이주에 한 번씩. 약 두 달 정도. 그 상담사는 대화하는 내내 뭘 너무 많이 적었고, 나 모르게 시간을 체크하려고 하는 게 느껴져서 불편했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가도 상담사의 ‘상담사’ 같은 태도에 흐름이 자꾸만 끊겼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내가 어떤 얘기를 해도 상담사는 똑같이 되물었다. 아직 학생이라더니, 그래서 미숙한 걸까. 자꾸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믿고 의지할 수 없었는데도 상담사는 섣불리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억지로 들여다보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어두운 마음의 우물을 열게 된 날, 나는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나는 아직 그것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날, 상담실을 나서면서 아, 이제 두 번 다시 여기에 오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나는 곧장 상담을 그만두고자 했으나 상담사는 시간이 맞지 않아 그런 거면 시간을 미루면 된다며 예약을 늦추자고 했다. 그런 실랑이가 몇 번 오갔고, 나는 일주일 만에 겨우 상담을 취소할 수 있었다. 상담사는 상담을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조차도 연구 자료로 확보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다.


충분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던 첫 상담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나의 마음속에 그렇게 깊은 우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는 상담에 이전보다도 더 회의적인, 상담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캠퍼스를 오가다 그 상담사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 상담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알은체 하고 싶지 않았다. 심리 치료에서 상담이라는 행위만큼 중요한 것은 나와 잘 맞는 상담사를 만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호밀밭출판사 We-rite 참여 원고

http://bu-rite.com/bbs/board.php?bo_table=we3&wr_id=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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