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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Aug 28. 2022

2021년 1월 5일의 기록

사람과의 관계를 힘들어하고 있을 무렵 아이러니하게도 짧은 시간에 깊이 사귀게 된 이가 있었다. 그는 당시 기웃거리던 ‘문화’ 판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동갑내기였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쓸데없는 걸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으며 직접 손으로 무언갈 만들길 즐긴다는 것이 그와 나의 공통점이었다. 몸매가 콤플렉스인 것도, 가족과의 관계를 힘들어하는 것도,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고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것도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와 나의 관계 형성에 있어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그도 나도 외로웠다는 사실이다. 소리굽쇠가 공명하듯 우연히 주파수가 맞았던 그와 나는 마치 자석처럼 순식간에 서로 찰싹 달라붙어버렸다. 그에게 캘리그래피 수업을 받았고 그가 진행하는 펀딩에도 참여했다. 그가 운영하던 카페에 죽치고 앉아 졸업논문도 완성했다. 매일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예쁜 카페를 돌아다녔다. 새해 첫날에는 함께 경주로 여행도 갔고, 그 길에 그는 자기가 쓴 책을 내게 선물해주기도 했다. 춥고 잿빛인, 문을 연 가게가 얼마 없던 그 겨울 경주의 풍경이 아직도 가슴에 아프게 남아 있다.


함께 한 추억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렇게 매일을 붙어 다녔는데도 그와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외로운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더 외로워진다는 것을,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당시의 기억은 대체로 흐릿하다. 몹시 추운 계절이었고, 갈 곳이 없어 몸도 마음도 얼어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반려식물 콩자와 내가 함께 시들어가던 그때. 자꾸 눈물이 나고 마음이 불안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는 내게 자신이 다니는 병원을 소개해주겠다 했다. 의사 선생님이 아주 친절하다고, 자신도 약을 먹고 있노라고.


상담의 첫 기억이 좋지 않았던 나는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담사의 신분–대학원생-으로 인해 생긴 선입견으로 상담사를 신뢰하지 못했으니까, 전문의라면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용기를 내어 찾아간 병원에서 펑펑 울고 나온 그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다녀왔고 약을 처방받았다고 ‘공식’적으로 우울증 환자가 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와 나는 서로의 상처를 내보이기 바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우울에 대해, 자신이 처한 불우한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게 듣기 힘들었던 나는 자꾸 말이 없어졌다. 나는 점점 그와의 만남을 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와 멀어져 갔다. 하지만 병원은 계속 다녔다. 어쩌다 병원에서 그를 마주치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감정을 들여다보길 재촉하지도, 억지로 이야기를 끌어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러지 않기를 권했다.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 어둠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자꾸 상처 주지 말라고 했다.


내 머릿속엔 온통 우울한 내가 가득했다. 병원에 가면 이야기를 하다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고 길을 가다 보이는 풍경에, 들리는 음악에 걸핏하면 눈물이 났다. 갑자기 터진 눈물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지하철을 타고 가다 중간에 내린 적도 있었다. 매일 울었고, 매일 우울한 나를 원망했던 그 시기를 다잡아주었던 것은 바로 약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 약을 먹으면 나아질 거야, 라는 그 믿음.


신기하게도 약을 먹기 시작한 후로 우울에 대해 생각하는 빈도가 조금씩 줄었다. 평소 두통이 잦아 두통약을 자주 먹는 나는 이 약이 꼭 두통약과도 같다고 느꼈다. 머리가 아플 때는 그게 신경 쓰여 머리가 더 아픈 느낌인데 약을 먹고 조금 있으면 아픔이 조금씩 약해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그런 느낌.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꼭 맞는 표현이라며 웃었다. 내가 먹는 약은 진통제는 아니지만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약이라고 했다.


평소에도 약에 의존적이었던 내게는 약의 효과가 아주 컸다. 그때 나는 다이어트 약인 식욕억제제를 주기적으로 처방받아먹고 있었다. 약을 처방해주던 곳은 어느 산부인과였는데, 우연찮게도 다니던 정신과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어느 날은 산부인과의 처방전을 받아 들고 곧장 약국이 아닌 정신과로 향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 처방전을 봐달라고 했다.


어디선가 내가 먹는 다이어트 약이 정신과 약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 약 때문에 제가 우울한 건 아닐까요’라는 나의 물음에 처방전을 받아 든 의사 선생님의 미간이 좁아졌다. 한참 말없이 그것을 들여다보고만 있던 의사 선생님은 산부인과에서 이런 약을 처방해주는구나, 혼잣말처럼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장기간 복용하면 부작용이 있는 약이고, 이 약 때문에 우울한 기분이 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끊으면 체중이 늘어날 테고 그 때문에 더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다른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는 게 좋겠다며 다른 종류의 식욕 억제제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약은 너무 비쌌고 나는 약을 끊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다이어트 약에 이미 내성이 생긴 상태였는지 약을 끊는다고 해서 곧바로 체중이 늘진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정신과 약을 먹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나의 기분을 살폈다. 좀 괜찮은 것 같은 날도, 아닌 것 같은 날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기분을 신경 쓰는 일’을 잊어갔다. 결국은 ‘기분을 신경 쓰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나에게는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약물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어느샌가부터 나는 우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우울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여 만에 정신과 약도 끊을 수 있었고 힘들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는 의사 선생님과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었다.


이후 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무사히  직장을 구했고, 직장 생활은 힘든 만큼 즐겁기도 했다.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이긴 했지만 매월 적지 않은 돈이 고정적으로 들어왔고, 미래도 그려볼  있었다. 다이어트 약도 정신과 약도  끊었고 취업도 했으니 우울은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절기만 되면 걸리는 감기처럼 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호밀밭출판사 We-rite 참여원고

http://bu-rite.com/bbs/board.php?bo_table=we4&wr_i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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