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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Aug 30. 2022

힐링센터

2021년 1월 21일의 기록

출근길 버스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복도를 걸으며, 계단을 오르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도 부지기수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첫해에 맡았던 업무는 담당자 연수가 외부에서 따로 이루어졌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어서 연수 내용 중에는 ‘힐링센터’라는 상담 기관의 소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이유도 없이 울컥 눈물이 솟던 어느 아침, 건물의 어두운 층계참에 서서 자꾸 흐려지는 시야로 겨우 힐링센터의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그날 당장 상담을 받으러 가고 싶었지만 힐링센터의 일정상 그럴 수 없었다. 일주일 후로 예약을 했다.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한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불안함이 누그러지고 나자 예약일이 다가올수록 그냥 취소할까 하는 생각이 커졌다. 여전히 상담의 효과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짝지인 J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자 J는 그래도 한번 가보자고 함께 가주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예약 당일, 조퇴하고 정말 오랜만에 한낮의 길을 걸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에 돌아다니는 게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히려 가끔은 내가 백수임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했는데, 그날은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모처럼 햇빛을 잔뜩 받아 보송보송해진 마음으로 힐링센터에 들어섰다. 처음 상담센터를 방문했던 때처럼 한 시간여 동안 검사지를 작성했고 이런저런 안내를 받았다. 다만 이번에는 검사지 작성 전에 접수 상담이 먼저 이루어졌다. 상담사는 무슨 일로 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는지, 지금 가장 힘든 게 뭔지, 상담이 끝나고 어떤 모습이 되어 있었으면 하는지를 물었다. 업무는 작년보다 줄었는데 일하기가 너무 싫다, 부장이 나를 힘들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서 일상생활이 어렵다, 모든 게 내가 뚱뚱하기 때문인 것만 같다, 엄마가 나를 너무 미워한다, 비정규직 신세가 지긋지긋하다, 요즘 세상에 그나마 비정규직이라도 일을 하고 있는 게 어딘데 복에 겨운 소릴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나는 두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중간중간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내가 눈물을 멈추지 못할 때마다 상담사는 아무 말 없이 휴지를 건네주고, 차가운 물을 떠다 주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상담사는 검사 결과를 보고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상담센터까지 찾아오는 적극성이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가 희망적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나를 다정하게 대하기’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돕겠다고 했다.


나는 상담실에 혼자 남겨졌다. 축축하지만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상담실로 들어오는 햇볕이 무척 따뜻했던 6월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지를 작성하고 마중 나온 J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상담이 끝나는 날까지 J는 매 상담 일마다 나를 상담센터까지 데려다주고, 상담하는 내내 기다렸다가 상담을 마치고 나온 나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선 해결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의지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함을 나는 이제 안다.


첫 방문으로부터 약 2주 만에 연락을 받았다. 상담 일정을 정해 다시 상담센터를 방문했다. 접수 상담을 했던 상담사가 나를 맞이했다. 보통 힐링센터는 지역의 다른 상담 기관으로 상담을 연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인데, 이번 일은 자신이 맡기로 했다고 했다. 그날은 주로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자살, 자해 욕구가 매우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며 상담사는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크게 다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었다. 높은 계단만 보면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떨어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마,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같다.


호밀밭출판사 We-rite 참여 원고

http://bu-rite.com/bbs/board.php?bo_table=we6&wr_i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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