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주 Jan 26. 2023

영화리뷰 헤어질 결심

뻔한 남자의 어리석은 사랑이야기

포스터 이미지 출처: CJENM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의 창작에서 가장 중요했던 동기 중 하나가 다른 서스팬스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의 형사 주인공에 대한 흥미 었다고 설명한다.      


산 정상에서 일어난 중년 남성의 변사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 해진. 그는 예의가 바르고 청렴한 성격으로 일반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형사와는 다르다. 여주인공 서래는 '매우 품위가 있어서 처음부터 좋았다'라고 해진에게 고백한다.      


해진은 중국 출신 이주여성 서래를 피의자로 지목하는 부하직원에게 ‘젊고 예쁜 외국인 여성은 반드시 피의자가 돼야 하냐?’고 하면서 ‘용의자가 외국인이니까 쉬운 말로 친절하게 설명하라’고 지시한다. 그는 서래에게 ‘왜 그런 남자를 만났느냐, 왜 그렇게 맞으면서 몸에 낙인까지 찍혀가면서 경찰에 신고를 안 했느냐’고 타박한다. 그러면서 그는 서래에게 자신을 ‘깨끗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자신을 품위 있어 보이게 포장하는 뻔한 멘트와 목소리 톤, 배려심 있어 보이게 꾸미는 태도와는 정반대로 해진은 업무용 카메라가 아닌 개인 핸드폰으로 용의자 서래의 허벅지에 있는 상처를 촬영하기도 하고 그녀에게 ‘실루엣이 예쁘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그의 잠복수사는 직업의식보다는 개인 욕망에 더 치우쳐 있다. 경찰조사에서 증거채증을 위한 신체촬영에 대한 규정은 매우 엄격하다. 남성 형사가 개인핸드폰으로 여성 용의자의 신체를 촬영하고 사진을 저장하는 것은 전혀 품위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형사가 아닌 남성으로서 해진의 서래에 대한 호기심은 멜로와 탐욕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영화를 완성해 주는 것은 탕웨이가 연기한 서래 캐릭터다. 서래는 ‘영감 하고 사는 참 불쌍한 여자’로 자신을 봉인하면서 해진의 심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박찬욱 감독과 각본을 공동창작한 정서경은 영화 구상단계에서 탕웨이를 서래역으로 지목하고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탕웨이는 이주여성 ‘서래’를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는 완전히 색다른 캐릭터로 완성한다. 탕웨이는 서래를 생존만을 모색하느라 사랑할 여유도 없었던 인물로 해석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자신의 심리를 숨기고 자신을 향한 외부 세상의 틀에 박힌 시선을 도구로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강한 이주여성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해진과 서래의 소통에서 통역앱 사용을 매개로 설정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다만, 경찰서 취조 과정에서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주민의 경우 해당 언어로 통역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데도 당연히 동석해야 할 통역자 없이 장면이 진행돼 아쉬웠다.


해진과는 다르게 서래의 해진에 대한 진심은 마지막까지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서래는 해진의 미제사건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고백은 해진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서래의 고백을 듣지 못한 채 바닷가를 헤매며 울부짖으며 서래를 찾는 해진의 모습은 그래서 어리석어 보이면서 짠하다.       


사진출처: CJENM





매거진의 이전글 북큐레이션 황금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