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이상에, 발은 현실에
가끔 어린 나이에 PM이 된 나를 보고 왜 그 직업을 선택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요"라고 대답했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나섰던 기억이 있다.
세상의 모순을 넘기지 못하고, "이렇게 하면 더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어서 어떻게든 남들을 설득하고자 노력했다.
처음 'PM'이라는 역할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직업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뻤다.
혼자만 잘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설득하고, '팀'이라는 생물이 되어 무언가를 만드는 일.
그리고 그 결과물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변화를 주는 것
그 모든 건 나에게 업무 이상의 감정을 주었다.
어쩌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 중 하나였고, 그때부터 이 일과 사랑에 빠졌다.
현실은 생각과 달리 ‘당연히’ 낭만적이진 않았다.
두 차례의 회사 경험은 단순히 계획만 세운다고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었다.
아무리 정교한 계획이라(고 생각하여)도, 옆에 있는 동료 한 명조차 설득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었다.
설득이 가장 중요한 역할에서, 설득의 실패는 단순 의견 충돌을 넘어 역량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런 경험 속에서도 나를 끝까지 붙잡았던 것은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라는 생각 하나였다.
좌절하라는 법은 없는지 작은 성공들도 있었다.
엉켜 있던 프로세스를 정리하니, 운영 효율을 넘어 실제로 사용자 경험과 비즈니스 임팩트를 개선한 일
버튼밖에 없던 초기 서비스를 다듬어, 사용자 리뷰에서 처음으로 "좋아졌어요"라는 피드백을 받던 순간
이런 경험들은 '사람이 중심'이라는 초심을 잊지 않게 해 줬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내 커리어의 시작점이었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내 커리어 기준이다.
일이 너무 지칠 때, '내가 왜 PM을 선택했는지'를 속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고, 협력하여 혼자는 만들지 못할 것을 만들어내는 경험.
바로 그것이 내가 PM을 선택한 이유였고, 지금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내가 맡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내가 관여한 제품은 나아질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PM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변화가 타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이롭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직도 완벽한 PM이 아니다. (완벽한 PM이란 게 있을까)
가끔은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가는 방향을 확신하지 못하여 무서웠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 역할을 계속 선택하게 되는 건 PM이라는 일이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자,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쉽게 흐려지지 않기를. 이상에 눈을 두되 현실과의 균형을 놓치지 않기를.
균형이라는 말에, 최근 본 전시에서 마주한 한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균형이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반복의 과정이다.”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