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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

by 파도


나이


춤과 영화 그리고 음악, 이 친구들을 정말 좋아해서 잠을 자지 않아도 피로감이 없던 친구들

그런데 이제는 이 친구들과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나이테가 늘어서인지 옛날 만큼의 설렘은 없다.

예전에 길을 걷다 문득 나이 든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웃는 사람들이 없었다.

모두 자신만의 무게 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피로 사회'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새로움이 생긴다면,

웃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


설렘을 하나씩 하나씩 닫는 나이테.

경험을 하나씩 하나씩 쌓는 나이테.


굵어지고 단단해질수록 유연한 생각으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다.


응, 아마도 중요한 건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



첨벙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이 명확해서 힘껏 달려가서 뛰어든 적이 있었다.

화창한 그 날씨의 온도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날씨에 비해 물 온도가 차가웠지만,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더욱더 힘차게 발을 저었다.

많은 사람을 제치고 선두를 향해 나아갔다. 중간중간 호흡이 필요했지만 무작정 손을 뻗었다.

어느덧 나는 수영이라는 행위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잠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며 숨을 쉬었다.

그사이 맑고 파란 수영장은 살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강물로 변한 듯하다.

‘더 큰 첨벙'을 해야 하는데, 다시 한번 뛰어들어야 하는데 이제는 겁부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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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한눈에 들어오는 한남동의 하늘에 반해서 옥상을 단독 사용하는 2층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아침마다 동그란 얼음을 꺼내어 컵에 옮기고, 선물 받은 캡슐을 내리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살아있네”라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찰나.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나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생각해보는 시간.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여름이면 수업 끝나고 모래를 밟았고, 가끔 점심시간에 계곡을 가기도 하였다.

부산-일산-부산-서울-런던 그리고 다시, 서울.

명리학에서 말하는 역마살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면서 만약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지금보다 내 주머니가 조금 더 두둑할까? 라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가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은 강보다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유영하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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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영국에 있었던 짐을 받았다.

그리웠던 향기가 날까 열어보았지만, 그 기대를 감추는 건 습한 종이 박스 냄새.

대부분의 옷을 제외하면 전시 포스터, 엽서 그리고 틈날 때마다 기록해두었던 일기장과 월급 영수증이 있었다.

여행이 아닌 그들의 삶을 경험했던 새로움 그리고 여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던 시간.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와 정해진 비자 기간 때문에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보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눈앞에 있는 두 박스와 함께 보이지는 않지만 프림로즈 힐(Primrose Hill) 같은 핑크빛 기억 동산도 함께 왔다. 그때의 나날이 높게 쌓는 과정은 아니었지만 ‘나’라는 넓이는 제곱이 되었던 시간.

어떤 것에 무게중심을 더 기울일지를 생각해보았던 시간.

다시, 한발 한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내디뎌 보아야겠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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