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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2. 2020

오늘 하루 행복했나요?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질문

요즈음 누군가를 만나면 조금, 아니 꽤나 비정상처럼 들리는 질문들을 불쑥 건넬 때가 있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질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법한 질문들이다. 가령 "나는 왜 살아가는 거지?" "오늘 언제 행복했나요" "예술이란 무엇일까"같은 본질에 대한 물음들이다. 직장인 친구를 만나 "일을 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묻거나 소개팅에 가서 "연애를 하는 이유가 뭐예요?"라고 묻는 경우다. 평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미안하지만 어쩌다 보니 타인에게까지 이어진다.


보통 질문을 받은 상대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거나 "잘 모르겠다"라며 수줍어한다. 그렇지만 의외로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이 돼 깊이 고민하고 답을 건네주는 사람들도 자주 본다. 몇몇은 "평소 생각지 못한 생각을 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표현도 건넨다. 어쩌면 이유를 모른 채 태어나 또다시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일상 속에서 본질에 대한 물음을 '오그라든다'는 명분으로 가로막아서 다들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는 있는 건 아닐지.


"살아가는 이유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건네는 이유는 단순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아닐지라도 삶의 본질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생각을 공유하다 보면 행복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활동들을 돌이켜 봐도 그렇다. 독서모임이나 토론동아리에 들어가 서로 가감 없이 이야기를 나눌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두 곳 모두 철학적인 질문과 삶에 대한 탐구가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나만의 해방구다.


주말이면 종종 미술관을 찾는 취미도 마찬가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유독 현대미술전을 자주 다녔다. 변기 하나 떡 가져다 놓고 예술이란다. 이게 무슨 예술이야, 장난하는 건가. 어떨 땐 욕이 튀어나온다.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보면 막 짜증이 난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미술관을 찾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던지지 못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왜 변기가 저기 왜 있는 걸까?" 일상을 탈주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그럼 나는 지금 왜 살고 있지?"라는 질문을 유도한다. 그래서 현대 미술관은 애증의 공간이다.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바삐 보내는 날들도 있다. 이상하게도 이런 날은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이 몰려온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정신없이 하루를 꽉꽉 채워 알차게 보낸 것 같은데도 공허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무언가 하고는 있는 것 같은데 하면 할수록 더욱 공허감에 빠져버리는, 목적지 없는 깜깜한 밤길을 걷는 기분이랄까. 방향을 잃은 날에는 내가 나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시간의 물줄기에 휩쓸려 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시간에 휩쓸려 텅 빈 하루를 보낸 날이면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 행복한 일 한 가지를 내게 묻는다.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때면 아주 사소한 하나라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침에 일어나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차가운 쓴맛이 되살아난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진다. 저녁을 먹으며 시답잖은 나의 농담 하나에도 깔깔 웃어주던 아이 같은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지어진다. 행복한 작은 일 하나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날의 공허한 기분은 눈 녹듯 스르르 풀어질 때가 있다. 비어 있던 하루가 채워지는 기분이다. 그럼 됐다. 이것 하나면 오늘 내가 버텨낸 하루의 이유로 충분하다. 내일도 사소한 행복들로 채워진 날을 꿈꾸며 스르르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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