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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4. 2020

존 레넌의 벽에서 <Imagine>을 들을 때

음악이 가져온 장면들

인생의 어느 순간이 하나의 음악으로 기억될 때가 있다. 음악이 불러온 가장 강렬한 기억 하나를 꼽자면 육 년 전 체코 프라하에서다. 야경이 아름다운 프라하의 까를교 근처를 걷고 있었다. 우연히 존 레넌의 벽을 마주했다. 1980년 비틀스의 존 레넌이 암살당했을 때 추모하기 위해 그의 그림을 그리며 추모하던 곳이다. 이후 공산 정권의 탄압으로 자유를 잃어버린 청년들이 사랑과 평화의 그림과 글귀들을 적으며 탄생한 곳. 평화를 노래한 존 레넌의 마음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노을이 서서히 떨어지며 까를교가 은은히 물들 때, 마침 존 레넌 벽 바로 앞에서 기타를 멘 중년 남성이 보였다. 벽에 기대어 비틀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그의 음악을 들었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와 렛잇비 같은 명곡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나올 법도 한데 말이지. 존 레넌의 이매진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 존 레넌의 벽까지 왔는데 이매진을 듣지 않고 갈 순 없었다.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곡을 마친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큐쥬 싱... 어 송, 이매진?" 그는 '왜 이제야 물어봤니, 기다렸잖아.'라는 표정을 짓더니 "오브 콜스!"를 외쳤다.


2014년 여름날 존 레넌의 벽 앞에서.


기타 반주와 함께 레논의 벽 앞으로 이매진의 가사가 흘러나왔다. 'Imagine all the people lin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모든 인간이 평화롭게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내가 몽상가라고 당신은 생각할지 몰라요. 그렇지만 난 몽상가가 아니에요. 언젠가 그날이 올 겁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존 레넌의 벽 앞을 지나쳐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이 흘러나온 삼분만큼은 나와 그, 두 사람만이 존 레넌의 벽 앞에 서 있는 착각을 불러왔다. 그는 나를 위해 노래를 불렀고, 나는 그의 음악에 온몸을 기울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평화의 실체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지금 체코 여행을 떠올렸을 때 기억나는 장면은 바로 이 삼분이 유일하다. 노래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들었던 가사와 기타 선율, 그때의 온도, 중년 남성의 표정 같은 것들이 지금도 그곳에 서 있는 것처럼 오감으로 그려진다. 신기한 일이다. 그렇다. 노래는 기억을 억하고 있었다.


그가 나온 사진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앨범을 다시 보니 오른쪽에 연주 중인 그가 보였다.




음악은 사랑의 순간을 소환하기도 한다. 벌써 10년이 지난 첫사랑 이야기다. 그녀는 이어폰을 건네며 브라운아이즈소울의 <러브 발라드>를 들려줬다. 11월 가을밤 양재천을 걸으며 그녀와 함께 이 노래를 들었다. "늘 내 곁에면 그렇게 있어줘요. 처음 같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보다 더." 그녀는 이 가사를 참 마음이 들어했다. 첫사랑의 강렬함 때문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아주 구체적인 말과 행동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해진 그녀의 촉감과 11월의 쌀쌀한 날씨, 양채천 흙길을 밟을 때 흙이 꾹꾹 발바닥으로 눌리는 소리, 깊은 밤하늘의 별들 같은 것들이 그때의 감정 그대로 되살아난다.  


음악은 사랑과는 반대로 때때로 처절했던 순간되살려낸다. 열아홉 살 경주에서 홀로 서울에 올라와 재수학원을 다닐 때였다. 수능 D-100일이었던 날로 기억한다. 이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당시 휴대폰을 쓰지 않았다. 캠퍼스에 누비는 친구들이 즐거운 소식들을 들으면 괜히 맘이 더 슬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평 남짓 고시원에서 버텼다. 일부러 학원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고 밀어냈다. 의지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기대기엔 너무 외롭고 슬프고, 우울한 날들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재수학원이 위치한 교대역 맞은편 MBC노래방을 향했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한 시간을 선불로 끊고 홀로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첫곡으로 임재범의 <비상>을 불렀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가사가 참 처절했다. 가사처럼 흐느껴 불렀다. 당당히 내 꿈들을 펼칠 날들이 언제가 있으리라 다짐하며 100일을 버텼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씩 임재범의 <비상>을 들을 때면 비 내리던 교대역 맞은편 MBC노래방으로 향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가끔식 음악은 다가오는 어느날을 상상하도록 돕는다. 나는유달리 한여름에 캐럴을 즐겨 듣는 편인데,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어서다. 따뜻한 모닥불의 온기가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린 노란 불빛들과 눈 내리는 마을도 그려진다. 상상만으로 행복해진다(아, 물론 현실은 다르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마 홀로 헬스장에서 쇠질을 할 예정이니까.)


음악이 타임머신처럼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게 해주는 덕분일까. 음악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대화가 술술 풀리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공감할 것들이 많아지며 대화의 물꼬가 확 트인다. 나도 모르는 새 호감이 생긴다. 어쩌면 음악이 불러온 삶의 추억들이 비슷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그려보는 앞으로의 어느 순간이 비슷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음악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의 범주 안에서 끝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험들을 종합해보면, 뇌과학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음악은 분명 어떤 뇌과학적인 이유로 특정 순간을 나의 머릿속에서 귀신 같이 끄집어낸다. 존 레넌의 벽에서 들은 이매진, 양재천을 걸으며 들은 러브 발라드, MBC노래방에서 부른 비상이 모두 그러했다. 음악과 함께 그 순간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덕분에 기억에 대한 나의 생각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과거 기억은 어느 순간 완전히 삭제돼 더 이상 되살아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음악이 있는 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끄집어 내지 못한 것이지 모든 기억들은 온몸 구석구석에 깊숙이 숨어 기다리고 있다. 되살아난 기억 속에는 모든 감각이 여전히 녹아 있다. 참 고마운 존재다.


먼 훗날, 2020년을 떠올렸을 때 어떤 노래가 지금 이 순간을 되살아나게 해 줄지 궁금해졌다. 좀 생각해봤는데 "이거야!"라고 할 만한 마땅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 유튜브와 멜론의 훌륭한 알고리즘이 내게 맞는 노래들을 척척 추천해주다 보니 아무래도 상황에 맞는 노래 하나 진득하게 들을 경험이 사라진 탓일까. 추천 플레이리스트에 의존하니 특정 노래와 깊은 인연을 맺기도 쉽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려 줄 음악 하나쯤 간직한다면 참 좋으련만. 들끓는 사랑의 순간이든 비통에 젖은 추억이 됐든 아무렴, 뭐든 괜찮다. 음악의 선율 안에는 그때 나의 삶이 녹아들어 있을 것이기에,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음악들이 나의 삶에서 하나둘 줄어드는 것 같아 슬픈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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