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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Nov 02. 2020

나의 헬스장 선택기

비교하는 삶


요즈음 나의 최대 관심사는 헬스다. 별일 없으면 일마치고 헬스장에 간다. 일이 끝날 때쯤이면 머릿속이 뜨거워진 휴대폰처럼 과열된다. 과부하에 걸린 듯 정신이 버벅 거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헬스만 하면 머릿속이 텅 빈다. 시스템 정리 버튼을 누른 기분이다. 생각이 명확해진다. 그런 점에서 헬스는 명상과도 같다. 그 맛에 쇠질을 한다.  


삼개월 전 세종시로 이사를 왔다. 갑작스러운 발령이었다. 가장 먼저 새로운 헬스장을 찾아 나섰다. 학군과 역세권, 조망권 이런 건 필요 없다. '헬세권'이 가장 중요한 입지 조건이다. 만족스러운 헬스장만 찾으면 이곳 생활도 행복할 게 분명하다.  


네이버 지도에서 집 근처 헬스장을 검색했다. 여러 업체가 지도에 떴다. 아무래도 서울보다 헬스장 인프라가 좋지는 못했다. 규모가 작은 개인 피티 샵이 많았다. 먼 거리에는 규모가 꽤 큰 헬스장도 몇 있긴 했다. 선택이 쉽지 않았다. 시설이 좋으면 거리가 멀다거나, 운영 시간은 길지만 기구가 별로 없는 식이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마음에 딱 들어맞는 데가 없었다.  


며칠을 비교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소거법을 활용해 두 곳으로 추렸다. 두 헬스장은 장단점이 명확히 상반됐다. 한 곳은 <247헬스장>이다. 이름처럼 24시간 7일 내내 운영한다. 추석과 설날도 예외가 없다. 세종에서 24시간 헬스장은 매우 드물다. 희소가치가 있다. 이 헬스장의 최고 장점이다. 거리도 가까웠다.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한다. 거리가 멀면 아무래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헬스장 고르는 1순위를 거리로 뽑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개인 PT샵이라 규모가 작다. 서울에서는 1000평 규모 헬스장을 다녔다. 여기는 기껏해야 50평 되려나.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규모가 작으니 머신이 별로 없다. 등 운동만 해도 상부, 중부, 하부에 적합한 머신이 따로 있다. 위에서 당기냐, 앞에서 당기냐, 45도로 당기냐에 따라서도 머신마다 다른 자극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쾌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 흔한 벤치프레스 시설도 없다. 싸이클 2개, 러닝머신은 고작 3개다.  


24시간 7일 운영 247헬스장 전경


반면 <플레토 헬스장>은 새로 생긴 헬스장이다. 규모가 크고 시설이 깔끔하다. 호텔 헬스장 같다. 가장 눈이 간 건 파워리프팅 시설이다. 바벨을 걸어두는 랙이 맛깔난다. 무엇보다 원판이 아주 고급지다. 실제 파워리프팅 공식 대회에서 쓰는 <ROGUE> 원판이다. 원판은 무게별로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구분된다. 쨍한 색깔의 원판은 보면 볼수록 영롱하게 빛난다. 꿈에 나올 정도다. 원판 가격은 어마하게 비싸서 서울에서도 구비한 헬스장을 찾기 쉽지 않다. 헬스장 일일 체험을 가서 보니 예상대로 머신이 다양했고 하나 같이 유명 브랜드였다. 보기만 해도 근성장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무동력 트레드밀도 있다. 사장님이 인테리어부터 기구 하나까지 신경 썼구나, 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운영시간이 짧았다. 오후 11시면 문을 닫는다. 격주로 일요일에는 아예 문을 안 연다. 토요일에도 단축 운영을 한다. 늦게 일마치고 운동 가야 하는데, 못 간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주말에도 헬스장을 못 가면, 우울한 주말이 된다. 치명적인 단점이다. 거리도 멀다. 20분가량 걸어야 한다. 공유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면 10분이 안 걸린다지만, 곧 겨울이 오면 이마저도 부담이다. 호텔식 시설답게 가격은 247헬스장의 두 배 수준이다.  


알록달록 원판 가득 플레토헬스장


두 헬스장의 장단점을 리스트에 적어봤다. 아!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다. 결정을 미루다간 헬스인에게 가장 무섭다는 그것, 최순실보다 무섭다는 근손실이 올 판이었다. 그래선 안 된다. 선택이 필요했다. '놀이공원처럼 여러 기구를 다루며 스트레스 풀기엔 플레토헬스장이 제격인 것 같다. 그러나 헬스장은 하루 이틀 다니는 곳이 아니지 않는가. 일단은 가깝고 봐야 몸 만들기가 좋지 않을까. 기구가 좋다고 몸이 꼭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 장비 탓하기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지 않니.' 이런 생각 끝에 거리가 가깝고 저렴한 가격에 시간 활용이 용이한 247헬스장을 택했다. '내가 선택한 만큼 후회 없이 헬스장을 다녀야지'라고 다짐했다.


3개월권을 등록했다. 집에서 가까우니 대충 운동복을 입고 마실 가듯 다녀올 수 있었다. 24시간 헬스장이라는 장점 덕에 내 집 안방 가듯 자주 헬스장을 찾았다. 회식이 끝난 늦은 밤에도 쇠질을 할 수 있었다. 사장님은 소소하지만 기구도 몇 개 새로 추가했다. 사람도 적어 기구 하나를 놓고 다툴 필요도 없었다. 추석 할인 이벤트를 하길래 1년 추가 연장을 했다.


하지만 즐거움은 며칠 가지 못했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슬슬 단점이 크게 보였다. 30kg 무게로 원암 덤벨 로우를 해야는데, 이곳에는 최대 덤벨 무게가 25kg였다. 매번 쓰던 머신만 쓰니 재미가 없었다. 헬스장이 좁으니 답답해 운동하는 맛이 나지 않았다. 기구와 루틴을 바꿔가며 운동하는 맛이 헬스장을 찾는 재미인데 말이다.  


나도 모르는 새, 거실소파에 누워 쉴 때면 플레토헬스장 인스타그램을 염탐했다. 새로운 기구와 피티 할인가, 삐까뻔적한 스쾃 랙에서 ROGUE 원판을 꼽고 운동하는 회원들의 모습. 나의 헬스장이 초라해 보였다. 근육 펌핑이 제대로 안 되는 걸 헬스장 탓을 했다. '기구가 별로라서 그래'라면서. 뻘뻘 땀 흘리며 쇠질을 하면서도, 머릿속이 비워지지 않았다. 몸은 247에 있었지만 머리는 온통 플레토의 영롱한 원판 생각으로 가득했다.  


대회용으로도 쓰이는 ROGUE 원판. 이쁘다.


오늘도 일을 마친 뒤 찝찝한 마음을 이끌고 247헬스장으로 향한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바벨을 든다. 이런 기분이라면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의 헬스장과 불편한 동거가 이어질 것만 같다. 최고의 헬스장을 원한 만큼 누구보다 까다롭게 비교하고 기회비용을 따졌는데,  얼마 못 가 후회만 가득해지다니. 비교하면 할수록 아쉬움만 더 커지는 아이러니에 빠지고 마는 게 인생인 걸까. 고작 헬스장 한 곳을 선택하는데도 이토록 흔들리는 나는 연약한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고 만다. 하물며 연애와 일, 새로운 만남, 나의 미래와 같은 굵직한 선택에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에 플레토헬스장을 몰랐다면 지금의 헬스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을까. 만약에 내가 플레토를 다니게 되면 상상처럼 정말로 행복해질까. 지금이라도 247헬스장에 만족하며 쇠질을 할 수는 없는 걸까. 모든 일에서 정답을 알면서도 늘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곳을 찾아 나서고, 또 다시 후회를 반복하는 가엾은 중생인 걸까. 잡념을 없애려 헬스를 하는데, 되레 잡념만 만들고 있다. 아마도 이런 마음이 계속된다면, 어쩌면 나는 조만간 두 헬스장 몰래 양다리 걸치는 '나쁜 남자'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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