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후회되는 일이 참 많다. 오늘도 아주 작은 결정부터 후회로 가득 찬 하루였다. 중식당에서 게살 짬뽕을 골랐는데 맞은편 지인의 차돌박이 짜장면이 그렇게나 맛있어 보이더라. "손님에게 정말 잘 어울려요"라는 점원의 말에 휩쓸려 산 옷이 집에 와보면 보잘것없어 보인다. 늘 가지 않은 길을 뒤돌아본다. 만약 그 길을 걸어갔다면 어땠을지 상상한다. 가지 않은 길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하루 몇 번을 후회하며 살아갈까. 매일매일 후회가 쌓여가니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후회막심한 세상 속에서 지금껏 단 한 번도 후회되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바로 헬스장에 가는 것이다. 헬스장에 가기 전부터 설레어서 펄쩍 뛸 만큼 미쳐있는 놈은 아니다. 사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 그로기 상태로 소파에 누워있으면 이 한 몸 일으켜 세우기도 버겁다. 졸려서 막상 헬스장에 가더리도 바벨을 들다 잠들어버릴 것 같은 피로가 훅 물려온다. 추위를 뚫고 헬스장까지 걸어가기도 귀찮고 짜증 나고 힘들다. '지금 컨디션으로는 절대 헬스를 하지 못할 거야. 오늘은 쉬는 게 맞아.' 뇌가 몸에게 간절한 신호를 보낸다. 뇌의 속삭임을 따랐다가는 절대 헬스장에 갈 수가 없다. 뇌가 더 이상 유혹하지 않도록 생각하기를 멈춘다. 일단 헬스장으로 발을 이끈다. 헬스장을 찍고 오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다짐한다. 헬스장에 도착해 스트레칭을 하고, 5분 정도 운동할 때까지도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스스로에게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니'라고 외치는 뇌의 투정이 이어진다.
하지만 딱십 분을 버티면 놀라 온 변화가 생긴다. 처음엔 피곤함에 절어 팔 굽혀 펴기 한 개도 못할 것 같았는데 한 개를 하면 두 개를 하게 되고, 스무 개를 하게 된다. 한 세트를 하니, 두 세트, 세 세트 쭉쭉하고 싶어 진다. 근육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관성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다. 삼십 분을 넘어서면 '아, 헬스장 오길 잘했다' 이 말이 툭 튀어나온다. 헬스장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표정은 화장실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처럼 상반된 표정이 된다. "10년 넘게 헬스 했는데 아무리 가기 싫은 날도 일단 헬스장에 가면 정말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수습기자 시절 우연히 알게 된 몸짱 경찰관 형님의 말. 헬린이이던 시절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이 이제야 납득이 간다.
여러 이유가 있을 터인데 우선 몸을 움직인다는 행위 자체가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보통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일만 하다 보니 몸이 굳고 찌뿌둥해진다. 근육을 움직여주고 땀을 내면 찌든 스트레스가 달아난다. 책임과 의무로 가득차 있던 머리가 비어지며 개운해진다. 호르몬적으로도 운동을 하면 도파민과 엔드로핀이 분비가 되며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키가 수십 권의 책을 내면서 달리기에빠져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펌핑이 된 몸을 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영어공부나 글쓰기, 회사일 같은 것들은 투자 효과가 단기간 눈으로 쉽게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헬스는 즉각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 가능하다. 하루에 성취감을 느낄 만한 일이 얼마나 있던가.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뿌듯함을 준다. 늘 후회로 가득 찬 하루 속에서 언제나 후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여지 없이 후회가 반복되는 하루다.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헬스장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