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을 먹는데 뉴스에서 NC다이노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소식이 흘러나왔다. 야구장을 찾은 한 여성팬은 인터뷰를 하며 "사연 (많은) 다이노스라 할 정도였는데 우승해서 행복해요"라며 울먹울먹 했다. 깍두기를 베어 물다 말고 나도 모르게 '야구팀이 우승하는 게 저렇게 울 정도의 일인가.' 별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나. 구단주 '택진이 형'이거나 NC소프트 주식으로 돈 좀 만져본 큰 손이라면 모를까. 단지 NC의 우승에 심술 난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서가 아니다. 삼성과 멀어진지 어느덧 십 년도 훌쩍 지난 얘기니까.
mbc뉴스데스크
사실 나 역시 야구를 보며 눈물 흘리던 시절이 있었다. 월드컵의 열기가 가시지 않던 2002년, 이승엽과 마해영이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우승을 결정짓던 순간. 초등학교 6학년 꼬마는 경주교육문화회관 목욕탕 TV를 보며 울음을 터트렸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와 가까운 경주인지라 목욕탕 남자들은 홀라당 벌거벗은 상태로 환호성을 질렀다. 창단 21년 만의 우승! 극적인 끝내기 홈런! 나의 롤모델 이승엽! 눈물의 함성으로 "최강 삼성"을 외쳤다. 삼성은 나의 자랑이었고, 나는 삼성의 자랑이던 시절. 선수들의 그날 기록과 시즌 타율, 홈런, 타점, 득점까지 기록지처럼 머릿속에 입력해두며 전력 분석원을 자처했다. 삼성의 승리와 패배 소식에 내 하루가 주식창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삼촌이 여자 친구(지금은 숙모가 된)와 데이트를 한다며 처음 대구경기장에 데려가 줬을 때, 내 심장에서는 정말이지 파란 피가 솟구쳤다.
2002년 삼성 우승 당시 이승엽과 마해영
지금 누군가 "야구, 어디 팬이세요?"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한결같다. "음, 삼성팬이었어요." 왜 과거형이냐는 꼬리를 무는 질문에 뭐라 답할 길이 없다. 오래된 연인이 큰 다툼 없이도 서서히 멀어지다 서로의 손을 놓아버리듯, 멀어지는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마음의 공간이 다른 것들로 하나둘 대체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입시, 취업, 성공, 돈과 같은 큼지막한 단어들로 마음의 공간이 채워졌을 때 삼성은 소리 소문 없이 마음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으니까. 다른 것들로 채우고 채워도 마음의 공간이 비어 있다는 불안과 강박은 계속됐다. 그 사이 나의 피는 다시 붉은색으로 변했고, 삼성이 없는 일상도 아무렇지 않게 굴러갔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응원하는 팀은 달라도 NC팬의 눈물과 어릴 적 내 눈물의 농도만큼은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을 활짝 열고 진득하게 사랑할 때 흘러나오는 순수와 열정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우연히 TV에서 100년 동안 맨체스터시티의 팬이라며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102살 백발의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한 팀에 평생의 삶을 내맡기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것만큼 복된 일도 없는 것 같다. 꼴찌를 일삼는 한화 '보살 팬'들이 순수와 열정을 잃어버린나 같은 인간보다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진정 즐기는 자들이 아닐까.
로이터연합뉴스
마음의 평온이라는 핑계로 이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중이다. 진득하게 사랑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은 없다고 믿고, 마음을 활짝 열기보다 적당한 선긋기가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합리화한다. 결국 오와 열을 맞춘 마음의 평온은 좀처럼 균형 잡힌 대열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 번 대열을 이탈했다가는 또다시 대열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과 고통의 정도를 이미 알아버려서인지도. 야구 따위에, 삼성 따위에 평온함을 내어줄 수 없다며 마음 밖으로 밀어내고, 밀어낸다.
어릴 적 마음에서 멀어져가는 안타까움보다 나를 더욱 두렵게하는 게 하나 있다. 어느 순간 다른 이들의 순수와 열정까지도 비웃고 있는 나의 마음이다. 내가 변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릴 적 순수함을 소중하게 간직해온 이들의 마음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비겁한 마음. 깍두기를 입에 물고 “고작 야구팀 우승했다고 저리 우냐”며 비아냥댄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티비 속 그녀에게미안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