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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Nov 25. 2020

당신의 옆집에는 누가 살고 있나요

나의 옆집 연대기

이곳 아파트로 이사 온 지도 언 넉 달. 나의 집은 602호다. 아직까지 맞은편 옆집 주인 OOO 씨를 모른다.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뒤돌아서면 보이는 옆집이지만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다만 어렴풋이 유추할 뿐이다. 퇴근할 때마다 맞은편에 놓인 그의 택배를 보면서 말이다. 같은 통로를 쓰니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택배. OOO 씨는 제주 삼다수를 즐겨 마신다. 쿠팡으로 잡다한 물건을 산다. 중국집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먹는다. 꽉 묶은 쓰레기를 문 앞에 자주 내놓는 걸로 봐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인 듯하다. 문 앞에 놓인 택배가 그가 먹고 입는 것들의 형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는 딱 거기까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혼자 지내는지 가족과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다만 문 앞에 놓인 택배 더미를 마주하며 OOO 씨의 안부를 속으로 묻는다.


이곳 아파트에 살기 전 서울의 한 오피스텔 1507호에서 지냈다. 2년 동안 옆집 그녀와 인사를 나눈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밤늦은 시간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밖으로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 순간 방화벽이 자동으로 닫혔다. 나와 그녀 둘만이 엘리베이터 앞 빈 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이거, 무슨 일이죠...?" 나와 그녀의 첫인사였다. 동시에 마지막 인사였다. 옆집이란, 죽음의 끝에 다가가서야 가까스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그런 사이. 그 후, 벽 너머 누군가와 언성을 높여 싸우는 그녀의 통화소리를 마지막으로 1507호를 떠났다. 내가 기억하는 옆집 그녀였다.


반지하에 살 때는 이름 모를 옆집의 형체가 더 가깝게 껴지는 법이다. 아침 7시면 울리는 옆집 휴대폰 알람 소리에 나의 하루도 시작됐다. 곧이은 샤워소리에 출근 시간을, 문 여는 소리에 퇴근 시간을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두 남녀의 다툼 소리에 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고, 낮밤 가리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소리에 고통받기도 했다. 벽을 쿵쿵 쳐대도 여전했던 격렬했고, 내밀했던 소리. 허름한 공간일수록, 두 집 사이의 벽이 얇을수록, 옆집의 형체는 더욱 뚜렷해지는 모앙이다. 성인이 되고나서 옆집이란 그런 존재였다. 반지하, 원룸, 오피스텔, 아파트 등 주거 형태와는 상관 없이 고작 인사 한 번 나누기 어색한, 어려운 사이.


며칠 전, 허겁지겁 닫혀가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을 겨우 눌렀다. 한 남성이 타 있었다. 이미 6층 버튼을 눌러뒀다. '헉, 혹시 저 사람이 바로 옆집 OOO 씨 인건가.' 드디어 옆집 주인의 실물을 영접하게 된 건가 기쁜 마음이 들다가도, 숨이 턱 막혔다. 6층에 같이 내린 뒤 서로의 문앞에 서서, 서로 등을 마주한 채, 띠디 띠 디디 도어록을 누르는 상황이 무척이나 민망할 것 같아서다. 인사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인사를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를 택했다.


소심한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옆집 사람에게 인사 건네는 것조차 민폐 같다는 자기 검열이 작동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인사를 건네면 '내가 무슨 시끄러운 소음을 냈나?' 눈치보는 세상이지 않는가. 이사 왔다고 떡 사들고 초인종을 눌렀다간 떡을 미끼 삼아 강도 납치를 일삼는 신종 범죄자 취급을 당할지도 모르는 세상이지 않는가. 6층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흘러 지나갔다. '제발 저 남자는 바로 옆집 주인이 아니어라'고 기도를 했다. 문이 열렸다. 다행스럽게도 그 남자는 나와 반대편 통로로 이동했다. '아마 저 남자는 육백십몇호쯤 되겠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맞은편 000 씨의 존재란 궁금하면서도 마주치기엔 부담스러운, 택배 하나에 안부를 묻는 게 편한 정도의 사이였던 모양이다.




오늘은 옆집 문 앞에 삼다수보인다. 문득 물리학 책을 읽다 접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떠올랐다. 독가스가 들어 있어 50% 확률로 죽거나 살게되는 상자를 직접 열어보기 전까지는 삶과 죽음이 섞여 있다는 그 고양이. 어쩌면 OOO 씨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내게 죽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중첩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도 나를 모를 것이다. 우리 집 앞 택배를 보며 나의 형체를 한 번 쯤은 생각해본 적이 있으려나. 쿠팡에서 가장 싼 탐사수를 매번 시켜 마시고, 닭가슴살을 허벌나게 집어넣는 생존력 강해보이는 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려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602호 아무개 정도로만 생각하겠지. 나 역시 그에겐 살았는지 죽었는지 만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일 뿐일 것이다.


만약 OOO 씨도 나처럼 혼자 살고 있다면, 혹여나 우리 두 사람이 고독사라도 하지 않도록 택배로나마 서로의 낌새 정도는 알아봐주는 사이가 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혼자나마 삼다수를 바라보며 옆집의 안녕을 묻는다. 곧 그의 집안으로 초대받을 삼다수에게 대신 안부를 부탁한다. '삼다수야, 삼다수야. 주인님에게 이름 모를 옆집 남자의 수줍은 안부를 대신해서 잘 전해주렴.'


우리집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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