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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Dec 25. 2020

크리스마스에는 죽음을 떠올린다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아파트 마당 나무들에는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잎처럼 빛나며 크리스마스가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예전만 못하다지만 카페에서 유유히 흘러나오는 캐럴은 코로나로 우중충 가라앉은 마음을 잠시나마 몽글몽글 녹여준다.


크리스마스는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다. 가족들과 오손도손 시간을 보내거나 연인과 로맨틱한 하루를 만드는 날. 솔로에게는 하루 종일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를 맘껏 볼 수 있는 그런 날. 하지만 내게 크리스마스는 조금 다른 의미로 특별하다. 만약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 기념일이 아닌 365일 중 평범한 하루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평소 다른 날처럼 무심코 흘려보냈을 것이다. 며칠 뒤에 25일을 떠올리면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다르다. 일 년이라는 지나온 시간의 흐름을 꽉 움켜잡게 만든다. "와, 크리스마스라니. 일 년이 벌써 지나 가버린 거야?" 크리스마스는 한 해의 이정표가 되어 지나쳐 온 시간의 흐름을 손에 잡히게 만들고, 나는 쏜살 같이 흘러간 시간을 알아채고 깜짝 놀라고 만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의 분위기와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되살아난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코로나가 터져서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가버릴 줄 상상도 못 했는데." 크리스마스와 크리스마스 사이 공백들무엇들로 채워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른 기념일도 많은데 하필 크리스마스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빨간 기념일인 덕분에, 빨간 날 중에도 새빨간 날이라서, 크리스마스 특유의 분위기가 들뜨게 해서, 해피 뉴 이어를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아서. 가령 삼일절이나 개천절도 똑같은 빨간 기념일이지만 크리스마스처럼 빨갛지 않아서 작년 그날들을 떠올리면 그감정쉬이 떠오르지 않는 이치와 같다. 며칠 뒤 새해가 다가오지만 지키지 못할 계획 세우기에 모두 경쟁하는 분위기 속에 나의 시간을 차분히 돌아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시간의 흐름을 좀더 치열하게 잡아보려 했다. 서른은 고작 십진법에 따른 숫자 분류 체계에 불과하지 않나. 그런데 서른 언저리에 온 나는 기필코 삶을 끝까지 파고들다. 수능을 치고 재수를 하고 대학 입학을 하고 사랑을 하고 취업을 하며 다사다난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시간이 왜 이토록 빠르게 흘러갔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올 것 같지 않는 내년 크리스마스를 떠올려 본다. 일년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갈지 막막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년 크리스마스에 달라져 있을 모습을 기대해본다.


올해 크리스마스기어코 다시 찾아왔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절대 군인이 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지만 기어코 입대를 했고, 고등학생 때는 직장인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결국 직장인이 됐고, 지금의 나는 결혼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지만 먼 훗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까마득히 먼 일이라고 여겨졌지만 막상 그날이 닥치면 하루아침에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보면 마지막 하루가 남게 될 것이다. 모두가 피할 수 없는, 모두가 똑같이 보내야 하는 날. 죽음의 시간이다. 죽음은 내년 크리스마스처럼 어느 날 내 앞에 다가 와 있을 것이다. 그날이 스멀스멀 다가 나는 지난 시간의 흐름을 돌아볼 것이다. 죽음 뒤의 내 모습도 한 번쯤은 떠올려 볼 것이다. 눈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 후회하고 있을까, 작은 행복으로 차곡 채운 지난 시간에 감사해하고 있을까.


죽음의 시간은 모두에게 단 한 번 뿐이다. 그렇기에 내게 크리스마스는 죽음이 오기 전 예행 연습 같은 기념일이다. 지난 날들을 후회하지 않고 온전히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의 날. 즐거운 예수님 탄생일에 죽음을 떠올리니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과 죽음을 한번쯤 떠올려보며 다시 한 번 태어날 수 있다면 그 또한 크리스마스가 숨겨둔 축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탄생과 죽음은 늘 맞닿아 있기에,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죽기 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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