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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May 06. 2021

'공산성'에는 행복이 없었다

행복을 찾아서 떠난 여행

따분한 주말 낮. 집 앞 메가 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시원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딘가 무작정 떠나고 싶다.' 한 주간 열심히 일 했지 않는가. 주말을 별 일 없이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재미나고 의미 있는 걸 해야만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회사 후배가 근처의 공주 '공산성'에 다녀왔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산성을 따라 산책하기 좋고 금강의 절경도 볼 수 있단다. 세계문화유산이라며 추천했었지. 세종에 온 뒤 늘 가보겠다고 마음만 먹고 미뤘던 곳이 아니겠는가.


네이버 지도에서 <세종 메가 커피 - 공주 공산성>을 검색했다. 때마침 10분 뒤 카페 앞으로 딱 맞는 버스가 도착 예정이라고 떴다. 책과 노트북을 가방에 허겁지겁 집어넣고 카페를 나왔다. 곧 550번 버스가 도착했다. 계획에 없는 여행이긴 해도 공산성에 다녀오면 행복한 주말이 되지 않을까?


세종에서 공주 공산성으로 출발


한 시간쯤 흘러 종점인 공산성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행복이 눈앞에 펼쳐질 것 같았다. 망설일 시간 없이 공산성을 올랐다. 후배 말대로 금강이 보였고, 관광객들은 금강철교를 뒷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사진 스폿을 지나 오르막 내리막이 무수히 반복되는 산성 위를 걸어갔다. 여기저기 설치된 문화재 안내판을 읽기도 했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별 감흥이 없었다. 경주가 고향에 자라서일까. 공산성은 새롭다기보다는 약간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니면 버스에서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공산성 사진을 수없이 봐 둬서인지도 모른다. 무더위에 땀만 뻘뻘 난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힘든 운동을 해야 하나 의문 들었다.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줄 거란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공산성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철교


아쉬움 마음을 안고 근처 국립공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입구에 대기 중인 직원이 "코로나로 4시 40분부터 줄을 선 뒤 70명만 입장 가능합니다"라고 외쳤다. 현재 시간은 4시 10분.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근처 카페가 있는지 물었다. 코로나로 인한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단다. 주변에는 박물관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가기에도 애매한 시간. 귀중한 삼심 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박물관 안에 나무로 된 벤치가 보였다. 공산성에서 보낸 피로가 급하게 몰려왔다. 그대로 벤치 위에 대자로 누웠다. 나른 나른한 시야로 초록빛 나무가 들어왔다. 봄바람이 지나가자 나무가 온몸 떨듯 스르르 흔들렸다. 햇살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몸을 데웠다. 투명한 하늘 사이로 새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오는 길에 산 공주 군밤은 여전히 뜨끈뜨끈 손을 달궜다.


우연히 찾아온 텅 빈 시간. 의도치 않게 찾아온 감정들. 순간 "이게 행복이라는 감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산성에 가야만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산성을 걸으며 찾아봐도 행복은 보이 않았다. 반대로 행복은 예상치 못한 다른 곳에 있었다. 행복의 집착에서 벗어난 지금 이 순간이었다. 지금껏 행복을 특별하고 거창한 무언가로 규정하고, 정복하듯 찾아 나섰던 게 아니었을까. 공산성을 찾은 내 마음이 정확히 그랬다.


내가 누웠던 벤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공산성이 보이는 카페에 들렀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행복은 저기 보이는 공산성에 있는 게 아니구나. 지금 여기, 일상에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행복이라 인식조차 하지 못한 일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행 출발 전 마신 시원한 아메리카노, 흘러나오던 에드 쉬런의 노랫소리, 버스 창문으로 바라본 들풀들. 어제 만난 지인들과의 식사자리, 피곤을 이겨내고 찾아간 헬스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 공들여 취재한 끝에 내보낸 기사... 별 거 아니라 생각한, 결코 행복이라 부를 수 없을 거라 여긴 일상들이었다. 행복의 순간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고 일상 곳곳에 존재다. 다만 일상을 놔두고 엄한 데서 행복을 좇느라 방치했을 뿐.


어쩌면 공산성은 비어 있는 공(空)산성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내 기대와 달리 공산성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공산성은 행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법을 알려줬다. 행복은 특별하지도 거창하지고 않으니, 정복하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돌아오는 버스 안. 마음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걸 느낀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설렘 때문이 아니었을까. 행복으로 가득 차 있을 일상을 만난다는 그 설렘 말이다.



카페서 바라본 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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