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르바 Jun 02. 2020

기자인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세상이 아닌 나를 기록하는 글쓰기

나는 신문기자다. 정확하게는 5년 차 사회부 사건팀 기자다. 지나고 보니 참 다사다난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포항 지진과 제천 화재, 독도 헬기 추락 사고 등 각종 재난 및 사건 사고 현장을 누볐다. 어느 현장이든 밤을 새워서라도 팩트들을 최대한 모아야 했다. 정확하게 기록해야 했다. 사고 원인을 찾아내고 만연해 있던 시스템의 결함을 지적하는 일의 시작은 정확한 현장 취재다. 취재는 세상의 기록이 된다. 정확한 기록이 조금이나마 세상을 따뜻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최선을 다했지만 취재는 늘 부족했다. 하지만 때때로 보람도 느꼈다. 내가 이 업을 택한 이유기도 하다.


"나의 내면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 세상의 이야기를 기록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지쳐서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정작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본 적이 없었다. 나란 놈을 정확하게 취재하고 기록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만들었는가. 왜 나는 살아가는가. 내가 진실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설레게 하는 물건과 장소는 무엇인가. 나는 언제 화가 나고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내가 나를 심도 있게 취재하지 않으면 영영 알 수 없는 질문들이다. 그 취재 과정을 이곳에 온전히 기록하고 싶다. 진짜 나를 마주하고 싶다. 늘 피하려고만 했던.   


기록되지 않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안네가 기록했기에 '안네의 일기'를, 괴테가 기록했기에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정약용이 기록했기에 '목민심서'를 지금 이 순간 마주할 수 있다. 나의 삶도 예전처럼 휘발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진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취재했듯 이번엔 나의 삶을 미친 듯이 취재하고, 또 기록하고 싶다. 기록하는 삶을 나는 명상을 하는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해석하며 나를 조금씩 알 수 있게 될 것만 같다.


다행(?)인 것은 이 공간에는 데스킹 과정이 없다. 기사량 제한이 없고 마감 시간도 없다. 기사를 못 쓴다고 취재를 못했다고 혼날 일도 없는 셈이다. 자유로운 만큼 거창한 기록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내 내면의 진짜 생각들을 붙잡아 두려고 한다. 기사 분량과 주제, 데드라인은 모두 내가 맘대로 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 여기서 만큼은 내가 편집국장이다. 내일 1면도 기대하시라.

매거진의 이전글 마침내,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올라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