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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27. 2020

마침내,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올라갔다.

7년 전,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고 나서



<냉정과 열정사이> 아오이와 준셰이


어릴 적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본 적이 있다. 군대에 가기 전 스무 살 즈음으로 기억한다. 영화는 이탈리아 피렌체가 배경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유학 중인 쥰세이와 옛 연인 아오이가 10년이 지난 뒤 두오모 성당에서 다시 만나며 끝이 난다.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이후 두오모 성당은 연인들의 성지가 된다. 나 또한 로망이 생겼다. 준셰이와 아오이처럼, 노을이 질 무렵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피렌체를 찾아 두오모 성당을 같이 오르겠노라고.


나는 병영 수첩에 이 로망을 적어뒀다. 제대하자마자 친구와 함께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를 찾았다. 피렌체로 향했는 길 내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상상했다. 물론 당시 나의 연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약 없이 무작정 그녀가 나타나 주길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쉽지만(?) 친구와 함께 두오모 성당에 오르기로 했다.


준셰이와 아오이가 두오모성당 꼭대기에서 만나는 장면


피렌체에 도착했다. 골목골목을 쏘다녔다. 노을이 질 때를 기다렸다. 이제 올라갈 시간이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자 피렌체의 중심에 위치한 두오모 성당이 눈앞에 들어왔다. 헌데 친구가 기진맥진한 표정을 지었다. 올라갈 힘이 도저히 없다고 했다. 결국 혼자 티켓을 끊었다. 두오모 정상을 향했다. 내부 계단은 나사처럼 구불구불하게 끝없이 이어졌다. 땀이 뻘뻘 났지만 500개에 가까운 계단을 거의 뛰어갔다. 나는 이제 곧 준셰이가 될 수 있다, 될 수 있다, 생각하며.


컴컴한 내부 계단을 지나자 정상의 문이 보였다. 문을 열자 붉은 노을빛이 내게 쏟아졌다. 드디어 영화 속 한 장면 속으로 내가 들어오게 된 순간이구나, 얼마나 바라던 순간인가, 감격스러워질 찰나. 눈앞에 두오모 성당의 거대한 돔이 떡하니 보였다.


30분 넘게 두오모 성당의 좁은 계단을 올라는데 두오모 성당이 보이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어리둥절했다. 에펠탑에 올라가면 에펠탑이 보이지 않아야 정상인 것처럼. 나는 도대체 어디에 오른 것인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처럼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 올라가 있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로망이 물거품이 됐다. 거대한 실망감을 안고 정체불명(?)의 건물을 내려왔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의 정체를 확인했다. "야. 두오모가 아니라 종탑이더라." 알고 보니 내가 오른 건물은 두오모 성당 바로 옆 건물 지오토 종탑이었다. 두 건물의 높이는 같았고, 계단 수도 거의 같았으며 심지어 입장료도 같았다. 헷갈릴 만도 했다고 억울해하자 친구가 딱 한마디 내뱉었다. "등신아."


내가 오른 지오토 종탑(왼쪽), 영화의 마지막 장면 두오모성당의 돔(오른쪽)


어쩌면 앞으로 영영 피렌체를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두오모 성당에 올라가기엔 입장 시간이 이미 늦었다. 내일은 베네치아로 이동해야 한다. 친구도 기다리고 있다. 나의 로망이 산산조각 났다. 허탈감이 몰려왔다. 산속에서 일주일을 굶은 한 인간이 눈 앞에서 붙잡은 토끼를 놓쳐버린 기분이 이럴까. 쓸쓸한 기분을 안고 티본스테이크를 먹었다. 피렌체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끝났다.





지오토 종탑을 오른 지 7년이 흘렀다. 예전 사진을 보다 오랜 만에 당시 여행의 추억을 떠올렸다. 지나고 보니 종탑에 올라 두오모를 바라보던 기억은 어느덧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돼 있었다. 지오토 종탑에 오른 덕분에 붉은 노을이 스며든 두오모 성당이 포함된 피렌체의 전경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지오토 종탑에 오른 덕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언젠가 두오모 성당에 오를 기회를 간직하게 됐다. 이래서 여행과 인생은 참 재미나는구나.


다행인지, 등신 같았던 그때의 나 덕분에 나의 로망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언젠가 꼭 사랑하는 사람과 두오모 성당에 올라가야지. 만약에 그런 날이 온다면,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일거야. "7년 전부터 널 위해 두오모 성당을 아껴뒀다고."


종탑에서 바라본 (두오모 성당이 포함된) 피렌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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