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대 위에 올라가 교장 선생님 흉내도 내보고 막춤도 췄다.
황성초등학교 3학년 6반 일기장
(축구를 하다 오른쪽 팔이 부러져 왼손으로 글씨 작성.)
1999년 11월 7일 일요일
제목: 죽을 때까지 해볼 수 없는 일
어제 저녁 12시 46분
조회대 위에 올라가 교장 선생님 흉내도 내보고 막춤도 췄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은 꼭 내 것 같다.
썰렁한 분위기지만 좋았다.
황성초등학교 학생 중에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2200여 명의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시작됐다. 훈화는 "사랑하는 우리 어린이 여러분..."으로 시작했다. 기나긴 훈화가 이어지다 드디어, '마지막으로'라는 끝맺음 말이 등장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입에서는 '마지막으로' 부사가 대여섯 번 더 쏟아진다. 마지막인 듯 아닌 듯 뫼비우스의 띠 같은 훈화는 20분이 넘게 이어진다. 뙤약볕 아래서 몇몇 학생은 픽픽 쓰러진 적도 있었다. "착한 어린이가 됩시다." 정해진 결론과 반복되는 훈화에 나는 열중쉬어 자세로 하늘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밤 12시 46분. 아무도 없는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 조회대에 올라섰다. 훈화를 하는 교장 선생님을 마음껏 흉내 냈다. 밤의 조회대에서 학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 낮이었다면 죽을 때까지 해볼 수 없는 일이다. 아무도 없는 야심한 밤을 틈타 그 일을 해냈다. 속이 후련했다. 온몸에 전율이 돋을 만큼 짜릿한 기분이다.
마음껏 춤을 쳤다. 정해진 춤이 아니다. 내 맘대로 추는 춤이다. 그래서 '막춤'이라 부른다. 10살 꼬마의 저항적 몸짓이자 반항적 행위예술! 텅 빈 운동장 조회대 위에서 펼쳐지는 몸짓은 그야말로 나를 자유롭게 했다. 억눌려 왔던 욕구가 마음껏 발산됐다. 죽어도 해볼 수 없는 일을 했을 때의 그 쾌감,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죽을 만큼하고 싶지만, 죽어도 해볼 수 없는 일들. 면접장에서 "이런 면접관이 있는 회사 저도 싫은데요." 대답하고 나오는 것. 꼰대 같은 상사의 지시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세요." 대꾸하는 것.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잊고 있던 댄스 본능을 길거리에서 마음껏 펼쳐 보이는 것. 쉽게 말해 '미친놈'이나 '또라이' 소리를 듣는 것들 말이다. 사회의 짜여진 틀 속에서 깊숙이 억눌려온 욕망들이다.
안타깝게도 이 욕망들은 모두 '죽을 때까지 해볼 수 없는 일'이다. 면접장에서는 입고리를 올리고 미소 지어야 한다. 전날 홈페이지에서 찾아본 회사의 추구 가치인 협동심과 도전정신이 가득한 사람이 돼야만 한다. 상사의 지시에는 우선 따르고 보는 게 회사 생활을 잘하는 첫 번째 철칙이다. 공손한 척, 착한 척 연기를 척척척해내야 한다. 길거리에서 막춤을 신명나게 췄다간 유튜브에 올라가 비웃음 사기 십상이다. 취업, 직장생활, 연애, 결혼, 양육, 부양... 이 속에 우리들의 진짜 욕망은 우리 안의 깊숙한 곳으로 숨어 버린다.
굳이 프로이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꾹꾹 억눌려진 욕망이 잘못된 형태로 발현돼 버린 경험을 한번씩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근 온갖 물건을 부숴버릴 수 있도록 세팅해놓은 '스트레스 해소방'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세태를 반영하는 듯 하다. 건강하게 욕망을 분출할 방법은 없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 답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열살의 나로 한번 돌아가 보려고 한다. '야밤에 몰래 회사 회의실에서 홀로 나를 혼내던 상사 흉내 내 보기.' '샤워 부스 안에서 하드록을 틀어놓고 미친 듯이 춤추며 헤드벵잉 해보기.' 나의 욕망을 위한 최소한의 작은 몸짓! 이마저도 스스로에게 허락해주지 않은 채 살아간다면, 그건 참 슬픈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