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Oct 26. 2018

자전거를 탄 남자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노래하는 기분이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면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오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겠지. 자전거를 탄 그 남자도 그런 부류였다.


자전거 타는 일은 그리 특별하지 않지만, 그 남자는 기억에 남을 정도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아니, 귀를 사로잡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그는 항상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노랫소리가 크냐면, 저 멀리 코너를 돌아 모습을 보이기 전부터 이미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우리 곁을 쌩하고 지나가 버린다. 길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만, 그는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 선곡도 늘 달랐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슬프고, 애절하고, (안타깝게도) 고음이 요구되는 노래를 선곡했다. 이별이라도 경험한 걸까? 아니면 새로운 가창력 훈련법이라도 되는 걸까? 그렇게 악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자전거를 보면, 괜히 내가 부른 것처럼 얼굴이 벌게지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 자전거를 볼 때면 '알프레드 디 수자'가 짓고,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았던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은 것처럼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그러지 못하는 내게는 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 나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신경 쓰게 되었던 것일까. 그 자전거를 본 날이면,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큰소리로 노래 부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김없이 자전거를 탄 남자는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오늘의 선곡은 김건모의 <미안해요>였다. 구슬픈 멜로디와 가사가 꽤 날씨와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다. 옛날에 자주 들었었는데. 자전거 탄 그 남자 덕분에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본다.



김건모 - 미안해요(2001)

https://youtu.be/NxI3qmusW_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