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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Sep 17. 2019

추억의 힘


우리 가족은 일 년에 네 번 모입니다. 설날과 추석, 나와 동생의 생일이 그때입니다. 우리는 일정한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듭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맥주를 한 캔씩 마십니다.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오르고. TV 프로그램은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김없이 옛날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옛이야기는 언제나 '아이고, 그 조그마한 것들이 이렇게 컸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너는 어렸을 때 참 많이 울었어. 아마도 널 가졌을 때 엄마가 많이 울어서 그런가 봐. 입덧도 어찌나 심하게 하든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힘들었다."  


"네가 세상에 나왔을 때 모두 깜짝 놀랐어. 일단 머리숱이 빼곡하게 자라 있었고. 키가 어찌나 크던지... 아기 무게 재는 저울 바구니에 다리를 걸칠 정도였다니까. 간호사들도 처음이라고 그랬어."


"바퀴 달린 보행기에 태우면 집 전체를 슝 하고 달리는 거야. 그러다가 저 신발장 구석에 걸려서 넘어지고 그랬어. 거기서 조금 더 컸을 때는 배트맨 놀이도 하고 말이야. 그때는 참 활발했는데."


"덩치도 산만한 애가 맨날 친구들한테 맞고 왔어. 너도 맞지만 말고 때려주라고 하니까 '내가 때리면 친구가 아파하잖아요'하면서 우는 거야. 미련할 정도로 순진한 아이였지."


그럴 때면 나는 묵묵히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보곤 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초등학생 때 기억에서 멈춘다는 점입니다. 내게는 그때가 가장 걱정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만. 그 이후에도 우리 가족이 함께였다면 우리는 지금쯤 어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있을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이런 레퍼토리는 반복될 것입니다. 언제나 들어왔던 내용이지만 나는 언제나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만큼은 나는 행복했던 날, 행복했던 가족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당연했던 일들을 지키려면 더 많은 힘이 필요한 게 세상의 이치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가족을 붙잡는 건 추억하는 힘입니다. 결국 우리가 추억하는 시간마저 언젠가의 추억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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