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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r 13. 2020

편지를 쓰는 마음


나는 당신을 만나면서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당신은 편지를 좋아했다. 아이처럼 좋아했다. 왜 같은 말인데도 글이나 편지로 받을 때 특히 기분이 좋은 건지 나는 미처 알 수 없었다.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든 것이 나의 글이었는지. 아니면 예쁜 편지지와 봉투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글자를 한자씩 써 내려갔던 그 시간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편지지를 지니고 다녔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이나, 기념일이나, 또는 화해를 해야 할 때마다 편지를 썼다. 당신은 어떤 일이든 간에 나의 편지를 받으면 마음이 풀어졌다. 나는 언제나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썼다. 거짓은 타이핑할 수 있어도 손으로 적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성껏 써내려가도, 당신 앞에서는 보잘 것없고 부끄러운 내용이 되어버렸다. 불완전한 언어로나마 평소 가려져 있던 것을 꺼내어 보여준 것에 의의를 두면서, 나는 민망함을 애써 감추곤 한다. 그럼에도 한줄한줄 읽어 내려가는 눈동자와 미묘하게 움직이는 입꼬리와 상기되어 가는 얼굴을 지켜보는 일은 항상 즐거웠다. 


한 번은 당신의 부모님께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짧고 간단한 내용이었다. 당신의 어머니가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고맙고 송구한 한편, 당신이 당신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사실을 알게되어 좋았다.


때로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쓰려고 하니 마음이 생기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편지를 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사라졌을 마음이 반가웠다. 그것을 곧 당신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는 늘 그런 마음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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