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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Nov 23.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

Eva : I want you to tell me, why?

이제는 말해줬으면 좋겠어. 왜 그랬던 거야?


Kevin : I used to think I knew, but now I’m not so sure.

처음엔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




'사이코패스 아이를 둔 엄마의 이야기'

이렇게 요약하기엔, 이 영화는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에바는 토마토 축제에서 자유를 즐기고 있었다. 관습도 구속도 없는 자유로움이다. 젊은 그녀는 군중 속에 몸을 맡기고 현실의 걱정을 떨쳐버렸다. 그녀에게 토마토의 붉은색은 언제나 자유일 거라 생각했다. 붉은색은 곧 구속이 되었다. 그녀는 원치 않는 아이를 갖게 된다. '엄마는 네가 태어나기 전이 더 행복했어.' 엄마는 아이를, 아이는 엄마를 증오한다. 그러나 이 둘은 보이지 않는 관계로 묶여있었다.


에바는 케빈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책임은 져야 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다. 그러나 케빈의 경우는 짜증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아이는 파괴적이었고 노련했다. 익숙해지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달랐다. 그녀는 케빈에게 익숙해지려고 했고, 케빈은 엄마에게 사랑을 갈망했다. 케빈은 결국 엄마를 제외한 가족을 살해한다. 그리고 학생들을 무차별 살해한다. 에바에게 붉은색은 결국 케빈이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이자 사회적 낙인이 되었다.


감옥에서 만난 둘은 남보다 못한 사이다. 그러나 에바는 주기적으로 케빈을 찾아간다. 2년이 지난날, 그녀는 마침내 묻는다. '이제는 말해줬으면 좋겠어. 왜 그랬던 거야?' 그건 비단 학살에 대해서만 묻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나에게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물은 것이었다. 케빈이 말한다. '처음엔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 그녀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면회 시간이 끝났다. 그녀는 불안해하는 케빈의 표정을 보았다. 결심한 듯 에바는 케빈에게 다가가 세게 껴안았다. 그녀는 그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케빈을 품에 안는다.



이 영화는 사이코패스 아이를 둔 엄마의 이야기다. 학살의 이유를 잊어버렸다는 케빈의 대답을 들으면, 우리는 그가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케빈이 엄마를 괴롭힌 것도, 가족과 학생을 죽인 것도 모두 그가 사이코패스기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버린다.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영화에선 어느 누구도 케빈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모르고 있다. 어쩌면 자신의 불우한 인생을 스스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케빈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에바가 케빈을 힘껏 끌어안듯,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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