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 봐. 존나 용감해질 수 있어."
영화 <올드보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철웅(오달수 분)이 오대수(최민식 분)에게 던지는 이 대사를 좋아한다. 위기 상황에 처한 오대수는 이 섬뜩한 말을 듣고 웃는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바로 1분 뒤에 자신에게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너무나 상투적인 명언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결정을 미루어왔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선택의 고통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도 나는 합리적이려고 노력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정말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더 안 좋은 상황이 생기진 않을까.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나의 삶을 가득 메웠다. 나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나의 신중함은 몇몇의 위험요소를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수많은 아이디어와 잠재성을 물 밑으로 가라앉도록 내버려 두었다.
몇 달 전의 나는 자신감이 떨어진 나머지 "부족하지만 그냥 이대로 살아가는 건 어떨까."라는 말을 어느 카페에서 내뱉었다. 그러자 나의 가장 친구는 내게 실망스럽다는 말을 아주 길게 해 주었다. 포기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나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속상한 한편, 현실에 안주하자는 세력에 너무 많은 힘을 내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리 힘들고 어렵게 살기를 자처해.' 그 와중에도 겁이 많은 나의 자아가 끝까지 항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통나무와 개구리 이야기가 있다. 다섯 마리의 개구리가 통나무 위에 있다. 그중에 네 마리가 뛰어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통나무에 남은 개구리는 모두 몇 마리일까? 정답은 다섯 마리다. 마음을 먹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마음만 먹고 행동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최근에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숨을 곳이 없다는 기분이 든다. 마치 벌거벗은 채 광장에 던져진 것처럼, 달리는 자동차가 등 뒤에 다가온 것처럼, 구명조끼도 없이 물에 빠진 것처럼. 이제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더 이상 통나무 위에 남아있는 개구리가 되기 싶지 않다. 그러니 나는 상상력을 잠시 접어두려고 한다. 지금은 존나 용감해져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