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똥처럼 짧은 일기들을 남겨왔다. 구태여 다시 찾아 읽을 일이 없는데, 정말로 쓸 말이 없을 때는 예외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쓸 말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게 가당한 일일까. 그건 마치 슈퍼 주인이 '팔 물건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게으른 변명이지만 그 부분은 차치하고.) 오늘은 미처 글이 되지 못한 채 쌓여있던 일기들을 꺼내어 바람을 쐬어주기로 한다.
- 2019년 4월 17일에는 이런 일기를 썼다. "'안된다는 것도 되게 하는 곳'이라는 문장을 지하철 상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사진을 출력, 합성해주는 작은 인쇄소였다. 참 멋진 말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남들이 안된다는 일을 하고, 그것을 되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 2019년 4월 30일에는 이런 일기를 적었다.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분위기가 우울했다. 한 명이 말했다. 야,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잖아. 내일 해야 할 일도 있고 같이 밥 먹을 가족도 있고. 그럼 된 거잖아. 행복한 거잖아. 그러니까 다들 기죽지 마. 짜식들아. 우리는 고개를 들고 그래, 맞아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 2020년 1월 15일에는 이런 일기를 새겼다. "횡단보도 앞 보행자 작동신호기를 누른다. 버튼을 눌러야 초록불이 켜지고 지나갈 수 있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평생 빨간불이어서 건널 수 없다."
- 2020년 4월 25일에는 이런 일기를 메모했다. "요즘엔 공허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슴 뛰는 일이 적다고 해야 할까.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다. 그건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권태롭고 무료한 일이다."
- 2020년 6월 2일에는 이런 일기를 남겼다.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나 가까워서 내 시야에 쉽게 사라졌다. 어느 날 조금 멀리 떨어졌을 때서야 보였다.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 나는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 2020년 6월 12일에는 이런 일기를 기록했다. "역전 바닥에 앉아 껌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종이박스를 찢어 보드마카로 쓴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인생이 껌껌할 때는 껌을 씹으세요.' 나는 껌이 씹고 싶어 졌다. 껌껌한 내 인생을 밝혀줄 수는 없겠으나 잘근잘근 위로는 되겠지."
이런 점 같은 일기를 쭉 이으면 과연 나 비슷한 것이 될까. 어쩌면 정반대의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언어 뒤에 숨은 인간과 세계는 그만큼 파악하기 힘든 영역이다. 내가 쓴 일기 속에는 내가 봐도 낯선 사내가 태연하게 앉아있다. 나는 일기를 읽으면서 그가 나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