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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ul 27. 2020

내가 나일 수 있는 곳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음 놓고 발 디딜 곳 없는 세상에서는 일종의 안전 기지 같은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는 사람이다. 당신들의 말 한마디, 작은 움직임에 따라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습관이 아주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변이 복잡하고 어지럽다고 느낄 때, 내가 나일 수 있는 장소로 도망가곤 했다. 그곳은 안목 해변의 외로운 벤치일 때도 있었고, 어느 습지 공원 깊숙이 숨어있는 퍼걸러일 때도 있었다.


나만의 장소가 꼭 물과 연관된 것에는 할아버지의 공헌이 크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는 꼭 나와 동생을 데리고 저수지로 산책을 가곤 하셨다. 원체 말이 없으셨던 할아버지는 저수지에 다다르면, 크림빵이나 보름달 빵을 우리에게 먹이고는 아무 말 없이 저수지 저 멀리만 바라보셨다. 그러고는 '저수지 물이 많이 빠졌구나.'라고 한마디를 던지시거나 '이제 돌아가자.'하고 걸음을 옮기셨다.


나는 아직도 할아버지가 저수지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떠올리셨을지 궁금하다. 어린 나이에도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보자면, 그것이 알게 모르게 세상이라든가 삶이라든가 좀 닮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 빼고는 모든 게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때의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은 지금까지도 내 삶에 작은 기반이 되었다.


요즘은 자전거를 타고 조용한 한강 둔치에 앉아 상념에 잠기곤 한다. 세상과 동떨어져 온전히 혼자가 될 때, 비로소 나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좀 서글펐다. 저기 서있는 버드나무처럼, 강가에 반쯤 담긴 돌처럼 그냥 그렇게 흔들리고 적시며 살아가면 그만인데. 나는 무엇이 그리 갖고 싶어서 허무함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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