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잃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나는 어디로든 떠났다. 어느 곳에 가보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온전히 혼자가 되고 싶다는 갈증이 나를 여행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어떠한 해답이든, 혹은 내가 잊고 있던 감각이든, 내가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어설프게나마 찾아오곤 했다.
여행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많지 않다. 나는 꽤나 게으른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계획도 목적도 없이, 그저 곤잠을 자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는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숙소 주변을 산책하며 빈둥대다가 '그래도 이왕에 먼 곳까지 왔으니..'라는 마지못한 마음으로 가까운 명소를 슬쩍 둘러보는 것이 나의 여행법이다.
나는 오히려 가까운 공원이나 호수나 작은 술집이나 골목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더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 풍경은 언제나 내게 앞으로의 내 삶이 평안할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은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이방인의 호기심과 뻔뻔스러움, 그리고 나 혼자만이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난 듯한, 여행자의 느긋함을 나는 온전히 만끽해왔던 것이다.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절박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시기부터 나는 지난날의 여행법을 조금씩 후회하고 있다. 좀 더 살피고, 좀 더 걷고, 좀 더 말 걸고, 좀 더 마음 쓸 걸,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떤 면에선, 여행이란 단순히 사치나 낭비일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 영혼 속에는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흉터처럼 남아 있어서, 자꾸만 간지러운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나는 여행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왔다. 우리는 떠났을 때 비로소 돌아갈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