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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Oct 21. 2020

생애 최초의 기억


'당신이 기억하는 생애 첫 순간은 무엇인가요?'라고 내게 묻는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살면서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이다. 아니, 프로이트를 읽으면서 이 문장을 발견했을 수는 있겠으나 그리 진지한 태도로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어제, 누군가 내게 이 질문을 물었을 때 나는 불현듯 어떤 장면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그 장면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조차 헤아리기 어려웠다.


나는 유년기를 외국에서 보냈다. 놀라운 점은 그 시기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가족 모두 이집트 카이로로 떠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아주 천천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게 최초의 5년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가족은 모두 인간으로 분장한 외계인이고 나는 초등학생의 몸으로 깨어나 지금껏 살아가는 건 아닐까, 라는 상상을 어릴 적에는 곧잘 했었다. 어쨌든 유년기에 대한 몇십 초 정도의 기억을 실마리처럼 떠올릴 수 있었기에, 나는 5년간의 시간을 간신히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기억은 자동차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유치원에 가기 위해 뒷좌석에 앉아있다. 뒷좌석 창문 너머로는 뜨거운 태양과 구름 없는 하늘만이 내 시야에 간신히 보였다. 운전자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와 가까운 사람이었다. 자동차가 멈추자 나는 재빨리 문을 열고 내린다. '빨리 가서 좋은 장난감을 차지해야 해.' 유치원을 향해 헐레벌떡 뛰기 시작한다. 몇 초 뒤, 나는 가방을 자동차 뒷좌석에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뒤를 돌아보니 자동차는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어느 뜨거운 이국 땅에서,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암전. 이것이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이다.


상실. 이것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평생 이 감각과 살아왔다. 왠지 놓쳐버린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아서, 떠나가는 것들을 자꾸만 미련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내게 있었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을 찾기 위해 살아간다,라고 스스로 대답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도무지 알지 못한 채, 오직 빈 곳을 채우려는 충동만이 나를 살아가도록 떠밀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이 기억만을 잊지 않고 붙잡아두었던 이유는, 내 생애 최초의 불안한 감정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이 순간을 기억해냈을 것이다. 가방을 놓고 내린 아이, 내가 소유했던 것이 떠나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아야 했던 아이의 심정으로 나는 이제껏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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