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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Oct 26. 2020

그렇게 나아갈 것


1

나에게 주어진 지면을 오직 내 이야기로만 채운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나의 내밀하고 어설픈 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지할 정도로 타인의 사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오직 나의 상실, 나의 사랑, 나의 어설픔, 나의 그리움, 나의 안쓰러움에만 매달려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행동가, 실천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더욱 그렇다. 세상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지니고 있고, 그 태도에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세상을 긍정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기분은 죄책감이었다. 분명하지 못한 태도와 변화의 가능성을 애써 외면해왔던 나의 미흡한 사상이, 맨몸으로 거리에 나앉은 사람처럼 창피하게 느껴지곤 했다.


나는 여태껏 자신을 붙들고 서 있는 데만 해도 충분히 괴로웠다고. 겨우 여기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 변명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2

오늘은 급히 옮겨야 할 짐이 있어 용달 트럭을 불렀다. 크고 작은 상자를 실었고, 목적지까지 함께 동석하게 되었다. "휴일에도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조수석에 앉은 내가 말했다. "저 같은 사람은 쉬면 허리가 아파요. 일하는 사람은 일을 해야 몸이 안 아파요." 기사님은 사람 좋은 말씨로 대답했다.


이십 년째 용달업을 해왔다는 기사님은 자신을 베테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서울 시내에서 자신이 가보지 않은 동네가 없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텅 빈 도로를 달릴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그는 자신이 이십 년 넘게 해온 일을 그렇게 평했다. 우리는 도로를 달리며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는 떡을 잔뜩 실은 적이 있어요. 다마스에는 450kg까지만 실을 수 있는데, 아마 600kg쯤 올렸나 봐요. 가는 도중에 차가 멈춰버린 거예요. 참 곤란한 일이었지요. 450kg까지 실을 수 있는 차에는 450kg까지만 실어야 한다는 걸 나는 그때 안 거예요."


나는 그의 말이 나에게 해주는 위로라고 생각되었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지고 갈 것. 그 이상을 짊어지려고 하지 말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놓아주면서 그렇게 나아갈 것. 이토록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쉽게 놓치며 살아간다. '그것 참 맞는 말씀이십니다.'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한강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고, 이름 모를 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죄책감을 거름 삼아 이곳에서 피어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른이 되었다면 그건 분명 그런 의미겠지.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나에게 주어진 세상을 긍정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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