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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Nov 21. 2020

록스타를 추모하는 방식


요즘 들어 부쩍 무기력함을 느낀다. 열정이랄까, 예전처럼 무언가에 마음을 쏟거나 몰입할만한 힘이 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화와 울분은 사라지고 울적함만이 나의 무드를 지키고 있었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사라진 건 '호기로움'인 것 같다.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친구로서 자기주장이 강하고 타인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다. 우리는 대학 시절, <세월호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를 주제로 발표를 준비하며 가까워졌다. 나는 과제로서 접근한 반면, 그 친구는 발표를 준비하며 한탄하기도 하고 격분하기도 하고 고양되기도 했다. 나는 그 정도로 세상에 무신경했고, 그 친구를 보면서 '이런 태도를 지니고도 분명 살아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는 문득 연락해서 만났다. 그날은 록밴드 '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사망한 다음 날이었다. 자살이었다. 우리는 청소년 시절을 린킨파크의 음악과 함께 보냈다. 괴로운 가사,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 가슴을 울리는 드럼과 기타 사운드는 세상 모든 것이 답답했던 그 시절 소년의 마음을 해소해주었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충동적으로 어느 LP 바를 찾았다. 손님은 없었다. 우리는 버드와이저를 한 병씩 주문하고, 린킨파크의 음악을 종이에 적어 신청했다. 사장님은 조금 곤란한 듯 말했다. '우리는 발라드를 주로 트는데요.' 그러자 친구는 진지하게 말했다. '사장님, 이 밴드의 보컬이 어제 죽었습니다. 저희는 그 사람을 추모하려고 온 거예요.' 사장님은 몇 초간 우리의 진지한 눈을 보더니, 곧이어 알겠다고 말했다. 


이윽고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린킨파크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강렬한 도입부와 기타 리프에 이어 체스터 베닝턴의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우리는 노래가 바뀔 때마다 감탄하기도 하고, 한탄하기도 하고, 고양되기도 했다. 지구 정 반대에 있던 록가수를 우리는 그렇게 추모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좀 더 일찍 알려줬다면 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울적하게 맥주를 마셨다. 


나는 지금도 세상에 무감각해질 때쯤 그날의 일을 떠올린다. 이제는 흐릿해진 감각. 그것에는 무언가 영화적인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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