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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Nov 25. 2020

겨울이 오면 떠오르는 것들


1

거리에 낙엽이 떨어진다. 겨울이 온다는 표지였다. 겨울에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없다. 그러니까 겨울은, 그게 무엇이든 붙잡은 것을 놓아주어야 하는 계절이다.


2

몇 년 전 이맘때쯤, 젊은 시인에게 시를 배운 적이 있다. 그 시절 내가 쓴 시는 현란한 수식어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표현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그나마 좋게 평가된 시가 있었다. 제목은 '노인이 세월을 쓸어낸다'였다.


천천히

또 고이고이

싸리나무 붙들어 맨 손

메마른 청춘 모아 두고

그래 됐다

잘 살았다

천천히

또 고이고이

낙엽이 노인을 쓸어낸다


머리가 희끗한 경비원 아저씨를 바라보며 끄적인 시는 시인에게 처음 칭찬을 받았다. 머리를 잔뜩 굴리며 써 내린 시들은 잊혔다. 글에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내가 줄곧 들어왔던 말이다. 생각이 많은 나에겐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욕심이 많을수록, 불안할수록 힘이 들어갔다. 글도, 삶도 그랬다.


3

겨울이 다가올 때면 나는 콩벌레를 떠올렸다. 어릴 적엔 낙엽 밑에 숨어있는 콩벌레를 손 위로 굴리며 놀았다. 새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던데. 날개가 없는 미물들은 겨울이 되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둥글게 말린 콩벌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춥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것을 주머니 속에 쏘옥 넣어두곤 했었다.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분명한 건 겨울에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겨울은 떠나는 계절이다. 나는 이를테면, 이별이라든지 미처 용서하지 못한 나날이라든지. 그런 것들만 내게서 떠났으면 했다. 그러나 슬픔과 기쁨은 한 몸이었기에, 나는 모두를 붙잡거나 모두를 놓아주어야만 했다.


4

거리에 낙엽이 떨어진다. 그래 됐다, 잘 살았다. 말하면서. 겨울이 되자 나를 남겨두고 떠날 준비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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