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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Dec 16. 2020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싫어하는 것이 많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팟캐스트를 녹음하던 중 '싫어하는 것이 많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혼자 속이 찔렸다. 내가 그동안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일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싫어하는 것들은 줄줄이 읊을 수 있는 반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쩐지 어설프고 서툴러진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기로 다짐했다.


먼저 나는 새책 냄새를 좋아한다. 이것이 가장 첫 번째 항목이라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지만 정말이다. 새책 냄새가 인쇄 잉크, 낱장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 책 표지에 쓰이는 코팅지 등에서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묘한 냄새는 내 마음을 놀이터의 어린아이처럼 뛰게 했다. 나는 어려서 서점 주인을 부러워했다. 아마도 그 시절 새 책을 산다는 건 내게 아주 큰 일이었기 때문에,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소중히 모셔오는 일련의 과정과 감각은 내게 긍정적인 기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또한 나는 맥주 마시기를 좋아한다. 다른 종류의 술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입에 대지 않는다. 처음으로 맥주의 맛을 알았던 건, 대학 동기가 기네스 드래프트 생맥주를 사주었을 때였다. '맥주란 괜히 비싸기만 하고 배부른 것'이라는 나의 관념을 깨뜨린 날이었다. 그렇게 맥주의 세계에 입문하던 중, 싱가포르의 어느 펍에서 수제 맥주를 마셔보게 되었다. 탄산이 적고 아로마 홉향과 시트러스 향이 가득한 에일 맥주는 '세상엔 아직 내가 모르는 좋은 것들이 많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기념비적인 한 잔이었다.


나는 안목 바다의 쓸쓸한 벤치를 좋아한다. 나는 버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을 좋아한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음악을 좋아한다. 나는 노견의 흰색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가을 햇살의 따뜻한 색깔을 좋아한다. 나는 자전거를 탈 때 부는 미지근한 바람을 좋아한다. 나는 단골 가게의 주인과 눈인사를 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나는 우리가 음악도 없이 춤을 추는 순간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얼굴이 붉어지고 말이 빨라지는 순간을 좋아한다.


이렇듯,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내가 바라는 모습의 일부가 담겨있다. 더는 살아갈 마음이 없다는 사람에게 나는 이런 소망을 전해주고 싶다. 이 세상엔 내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으므로, 나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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