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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an 01. 2021

한 해의 끝자락에서


1

불안감과 기대감은 마치 신기루 같은 것이라서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리에 있다.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면 이 신기루는 내 눈 앞에 나타나 아른거렸다. 이제는 적당히 무시할 만큼 무뎌진 걸 보니, 나는 어른이 되었나 보다.


2

요즘은 밤낮이 바뀌었다. 새벽에 깨어있을 때 좋은 점은 텅 빈 거리를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찬 공기를 맞으며 걸을 때면 잠시나마 살아있는 기분이 느껴졌다. 한 번은 골목을 정처 없이 걷다가, 작은 가게 앞에 서 있는 청년을 보았다. 그는 진열대에 놓인 스노 글로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짝이며 휘몰아치는 꽃가루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가 신경이 쓰여 걸음을 쉽게 옮길 수가 없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새벽에 스노 글로브를 바라보는 장면은 어딘가 어색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내 인생에도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없다. 그러나 과거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왜 모든 시간은 빛나는 것일까. 지금 내게는 평범한 일상을 긍정하기 위한 예민한 시각이 필요하다.


3

연말이 되어서 특히 느끼는 건, 내가 제대로 쉴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릿속으로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했다. 요새는 잘 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글쎄, 곧 세상이 종말 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분명 효과는 있는데, 현실적인 가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 효력은 매우 일시적이다.


4

이번 주에는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오랜만이네. 웬일이야?'라고 묻는 친구에게 '그냥, 연말이라. 잘 지내?'라고 답해야겠다. 그럭저럭 지낸다는 의미 없는 말이 오가거나, 이런저런 한숨 섞인 한탄을 나누겠지만, 더 나아가 그때가 좋았다며 잠깐이나마 반짝였던 과거를 회상하겠지만, 어색한 통화 끝에선 '우리 좋은 계절이 돌아오면 만나자'라며 다음을 기약하겠지만, 무언가 끝나간다고 느껴질 때면 본능적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여지를 남겨놓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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