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기 위해선 그런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함은 꿈대로 살아가는데 대한 작은 대가일 뿐이다.” - 피터 맥 윌리엄스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제목을 보고 <미움받을 용기>를 떠올렸다면 그 비슷한 무엇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혹자는 ‘힘들고 불편한 것을 무조건 참으라는 소리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오히려 주체적인 선택과 그로 인한 진보에 관해 말하려고 합니다.
불편함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내가 행동함으로써 겪는 불편함과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남는 불편함이 있겠지요. 여기서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은 전자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 종종 불편한 순간이 생깁니다. 우리는 어떤 사안을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합니다. 만약에 나를 제외한 다수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방향으로 결정하려는 참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당신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팀원들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길, 둘째는 무언가 찝찝하지만 결정을 받아들이고 미팅을 끝내는 길입니다.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런 상황은 꽤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사안의 중요성과 참여 멤버, 피로도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다르게 대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향성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 놓이면 대체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길을 선택했었는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Bad Feedback을 줘야 할 때, 동료의 인사고과를 결정할 때, 감정적으로 편하지 않은 상대와 협업을 해야 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겪게 되는 갈등입니다.
Bridgewater Associates를 창업한 레이 달리오는 말합니다. 타인에게 좋지 않게 보이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worry about appearing good),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worry about achieving the goal). 우리는 후자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자신이 가장 좋은 해답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직면하는 도전적인 상황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임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목적과 목표를 갖고 있나요. 그것을 진짜라고 확신하고 있나요. 만약 자신이 걷는 길, 또는 조직이 걷는 길에서 꼭 필요한 행동이라고 ‘믿는다면’ 가급적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순간 누군가에게 좋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혹은 내가 모자라게 보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깨고서 말입니다. 그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을 동의했다는 듯이 말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런 행동이 쌓이면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결국 조직 전체를 망치기도 합니다.
합리화를 잘하는 사람은 –저 또한 그중에 하나인데- ‘어차피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테니까’라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내 의견이나 피드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일단 내 의견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은 누구의 의견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행동은 언제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결정은 여러 가지 비판과 지적, 반증, 예상 리스크에 대한 수많은 고려를 거치고도 살아남은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칼을 날카롭게 벼르는 데에 숫돌이 필요하듯 말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모든 행동의 원천은 반드시 진실된 목적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생되어야 합니다. 이기심과 비합리성, 비객관성으로 점철된 생각 -유사한 용어로 ‘생떼’, '땡깡'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감정적인 Blame이나 Blocking이 목적인 의견은 언제나 설득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말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성장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기’라는 점입니다. 모든 진보는 ‘피하기’가 아닌 ‘마주하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부터 그러지 못하는 주제에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부끄럽지만요. 하지만 제 자신이 업무적으로든 인격적으로든 그동안 조금이나마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를 발휘했던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