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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Feb 09. 2021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스물아홉이 되던 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는 여행 회사에 다니던 사회 초년생이었다. 일에 매진하며 살았지만 그리 생산성은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사내 이벤트에 선정되어 세계일주를 떠나게 되었다. 최소 경비로 최다 도시와 최장 거리를 이동하는 여행 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였고, 생각 없이 제출한 내 계획서가 선정된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여행이 시작됐다.


아홉 개 도시를 지나는 여행에서 나를 지배한 감정은 의무감과 외로움이었다. 회사에서 지원해준 경비로 세계일주를 하는 일은 인생에 둘도 없는 기회였기에 모든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홀로 외로움과 견뎌내야 했기에 나에겐 무언가 할 일이 필요했다. 내가 선택한 일은 기록이었다. 나는 여행을 하며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카메라로 찍었고 그때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메모장에 자세히 묘사했다.


혼자 여행하고 기록하면서 얻은 교훈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학교와 회사를 빼면, 이국에서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더라?' 나는 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여행을 할수록 내가 서있는 풍경은 바뀌었고 내 모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나를 슬프게 하는 것... 그제야 내가 보였다. 가장 가깝지만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와 제대로 마주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서른이 되던 해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짧은 에세이를 메일로 보냈다. 처음엔 내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부끄럽고 어려웠다. 이토록 즐거운 일이 넘치는 세상에 사적인 편지에 마음 쓰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런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글을 보냈다. 그것이 어느덧 2년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었고 도리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감각은 내가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나는 그것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나, 그리고 당신,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작은 존재다.' 이 문장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감추기 위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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