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은 꿈을 자주 꾼다. 꿈속에서 엊그제 보낸 뉴스레터에 장문의 피드백이 왔다.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퇴사한 회사의 대표가 꿈에 나왔다. 나에게 다시 회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내 능력이 부족해 돌아가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다음에는 어떤 이유로 사이가 멀어진 친구가 꿈에 나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모른 척했다.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 꿈들이 너무 생생해서 깨어난 뒤에도 마음이 어지러웠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목적은 소망 충족에 있다'라고 말했다. 꿈을 꾸는 원동력이 소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에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말이 맞다면, 나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2.
요즘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꾸준히 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면 눈동자가 흔들리고 호흡이 떨린다. 나는 항상 포기하고 싶은 마음인 데다가, 언제나 다른 이들을 붙잡고 '당신에게는 도대체 어떤 동력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라고 묻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쎄요, 저도 여전히 헤매는 중이라서'라고 말하기엔 상대방도, 나도 서로 민망하고 죄송해지는 상황이 된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는 이유는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항상 스스로를 의심하고 극도로 불안해하는 사람은 절대 한 가지 동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커다란 기계처럼 여러 요인이 맞물려서 더 이상 내 의지로 멈출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쉼 없이 달리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지속했다기보다는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껏 계속 해왔던 것이다.
누군가에겐 허무한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나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자유의지를 과대평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나로부터 수많은 배신을 당해왔기 때문에 나의 게으름과 간사로움을 잘 알고 있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스스로에 대해 낙관할 만큼 큰 그릇은 못 되는 것이다. 다만 나는 책임지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대신 한 번 책임진 일은 끝까지 챙긴다.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성질을 잘 활용하면 나를 내가 원하는(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내 손으로 시작해서 흐지부지 끝난 일들이 많다. 그것들은 내 안에 조금씩 흉터처럼 남았다. 더 이상은 자책하고 싶지 않아서 웬만하면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리하자면 내가 꾸준히 하는 원동력은 '나 자신에게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다.
3.
확신을 갖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작 일 년 전에 했던 말도 후회하고 있다. 그만큼 나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어느 날 내 안에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될까. 내가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 질문에 스스로 어떤 대답을 하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