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봄볕이 비추었다. 일 년 만이다. 봄은 모든 근심을 잊게 만든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게 한다. 봄이 되면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 봄에는 그림자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햇빛에 비친 잔물결을 우리말로 '윤슬'이라 부른다. 나는 봄볕에 비친 윤슬을 바라보다가 눈이 멀어버린대도 좋다고 생각해본다. 단지 봄볕 하나로 삶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면, 나는 분명 가볍고 미약한 사람이다.
다리 위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각자의 이야기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 달리고 있는 청년은 건강한 삶을 찾고자 한다. 아이와 원반 던지기를 하는 남자는 좋은 아빠가 되기를 원한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자는 작고 소중한 움직임에 관심을 쏟는다. 돗자리 위에 누워 웃고 있는 연인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모두의 인생은 봄볕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봄볕 아래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일 년 전, 내 인생은 추운 봄을 지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겨울은 한차례 지나갔으나 한기가 남아 여전히 움츠려 있는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나는 봄 한가운데 있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은 매일매일 기대감에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감당하기 어렵고 벅차기도 하지만, 그 또한 봄이기에 겪는 일이라 여긴다. 꽃은 자신이 질 때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봄볕과 꽃을 따라 누군가를 알아주고 오늘을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