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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Dec 19. 2021

울음은 내일을 살아갈 준비가 된다


종종 울고 싶어지는 날들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밤이었고 혼자였고 술을 조금 마셨을 때 찾아왔다. 그럴 때면 울기 위한 재료를 찾아 나섰다. 줄여서 '울음 재료'라고 해야 할까?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고 싶어서 슬픈 것을 찾는 행위가 어딘가 이상스럽기는 하지만 그날만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내가 가장 즐겨 찾는 울음 재료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방송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45년 남북 분단과 1950년 6.25 전쟁으로 따로 떨어져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가족들의 재회를 다룬 방송이다. 이들이 모니터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큰 감동과 슬픔을 전한다.


이산가족들은 먼저 자신이 찾고 있는 가족이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미 얼굴을 보면 서로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신중하게 가족만이 아는 이야기를 묻는다. 이를테면, '고향이 어딥니까? 어떤 집에서 자랐는지 기억합니까? 어디서 헤어졌습니까?'라든지 '제 몸에 어떤 특징이 있는데 무엇인지 압니까?'라고 묻는 식이다. 몇 번의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얼굴에 담겨있는 의심은 조금씩 확신으로 바뀌어간다. 끝내는 서로를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에서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 된다. 다시 만난 가족들은 지금껏 이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줄 알았다며 지나간 사정들을 털어놓는다. 어떤 이는 다시 찾은 노모(老母)에게 "엄마가 열 밤만 자면 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계속 기다렸어요."라며 30년 늦은 서러운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가족과의 극적인 만남은 거친 세상살이를 지나온 어른들도 한순간에 어린아이로 만든다. 그 순간들은 울 줄 모르는 나에게 우는 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한껏 울고 나면 개운해진다. 가빴던 호흡은 이내 가라앉고 심박수가 떨어지면서 안정을 되찾는다. 눈물로 축축해진 얼굴을 씻어내고 침대 위에 이완된 몸을 누이고 나면,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들도 견뎌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울음은 내일을 살아갈 준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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