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Dec 19. 2021

조금 이른 회고(回顧)


이제 두 번의 주말을 보내면 올해는 끝이 난다. 세상은 벌써부터 내년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서점에는 트렌드를 정리한 책들이 나오고, 새로운 달력과 다이어리를 선물하며, 사람들은 하나둘씩 올해의 책이나 영화를 선정하고 있다.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볼 때면 막막한 마음부터 든다. 내가 그린 365개의 그림들을 한 군데 모아놓고 저 멀리서 바라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해석하는 일에는 창조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회고는 일종의 취미활동이자 더 나아가 예술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도 조급한 인간 중 하나로서 조금 이른 회고를 해본다.


돌이켜보면 '살아갔다'기 보다는 '살아졌다'에 가까운 날들이었다. 운전 실력이 거친 기사님의 버스에 올라탄 기분으로 보냈다. 멀미가 날 정도로 마음이 자주 바뀌었고 몸도 항상 피곤했지만 그래도 어찌 됐든 앞으로 나아갔다. 이를테면 가까이서 보면 지그재그, 멀리서 보면 직선이었다든가, 주식으로 치면 상승과 하락을 오가다가 결국은 미세한 반등이었다는, 뭐 그런 식의 이야기다.


유난히 자주 도망쳤다. 크고 작은 불안들,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들로부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나를 성장시킨 순간은 불확실성을 끌어안을 때 일어났다. 모든 불안은 실제로 마주했을 때 내 생각보다 컸던 적이 없었다. 이 감각은 수백 번을 체험했어도 여전히 미숙하다.


원하는 것이 줄었다. 의욕과 호기심이라는 거 참으로 소중하다. 언제나 주어지지 않는 선물이다. 일단 불씨가 있어야 장작도 넣고 풀무질도 할 텐데 말이다. 간절하게 원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의미다. 본질적으로 의욕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지쳐있을 뿐이다.


나를 지키기 위한 규칙들이 생겨났다. 되도록 계단으로 오르내릴 것, 술을 마시면 이틀은 쉬어갈 것, 커피는 하루 한 잔만 마실 것, 물을 자주 마실 것, 영양제를 매일 챙겨 먹을 것, 매일 아침 계획을 세울 것,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줄 것,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할 것... 그렇게 규칙이 생겨날수록 내 삶에 일어날 수 있는 변수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 때는 부러워했었던, 한편으로는 아쉬운 날들을 지나고 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내 마음처럼 된 적 없던 날들을 머리카락 자르듯 보내준다. 지난 후회들, 아쉬움들을 모두 털어내고, 새손님을 맞이할 시간이다.




제가 쓴 에세이와 글, 음악 추천을 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뉴스레터를 구독해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울음은 내일을 살아갈 준비가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