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운동을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다. 이건 내 인생에 매우 중대한 사안인데, 나는 살면서 운동을 좋아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체육 시간에 다들 축구를 하는 와중에도 운동장 스탠드에서 소설을 읽거나 친구와 농담 따먹기를 했던 종류의 사람이다.
운동을 안 해도 건강했던 시절이 있었다. 20대에는 매일 과음을 하고 야식을 먹었다. 그래도 몸에 이상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신체 회복력이 앞으로도 영원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첫 직장을 들어가고부터였을까. 일상이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거나 침대에 누워있는 것 외에는 없던, 산책이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던 때부터 조금씩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유연하던 허리는 뒤로 꺾이지 않을 정도로 뻣뻣해졌고, 자세는 거북이 목처럼 구부정해졌다. 무엇보다도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 숨을 헐떡이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렇게 온몸으로 피로와 세월을 거리낌 없이 받으며, 어느덧 7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건강 검진 결과를 받았을 때였다. 검진표에는 당뇨, 고혈압, 지방간 등등 내가 알고 있는 안 좋은 단어들이 모두 적혀 있었다. 점수로 환산하면 100점 만점에 57점이란다. 학창 시절에도 안 받아본 50점 대 성적표를 서른두 살에 받았다. "허약한 사람보다 더 안 좋은 상태예요." 의사 선생님은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국민건강보험에서 2주마다 건강 메시지를 내게 보내왔다. "운동은 한 번만 해도 2일 동안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킵니다." 정부에서 내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꽤 굴욕적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이제는 피할 수 없다고. 살기 위해서, 운동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기로.
그리고 작년 말, 호기롭게 피트니스 복싱짐을 찾아갔다. 혼자서는 자신이 없으니 그룹 운동을 하고, 다년간 UFC 영상을 봐온 팬으로서 복싱도 배울 생각이었다. 운동은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마치 포크레인 운전 자격증을 따는 기분이라고 할까. 로잉머신을 타고, 쨉과 원투를 배우고, 버피 테스트, 마운틴 클라이머, 스쿼트 등등 미국에서 건너온, 효율적으로 신체를 조지는 운동을 하고 나면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였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속하고 있다.
아직 한 달 차이지만, 아예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겪는 변화를 소개해본다.
1. 잠에서 빨리 깬다. 여전히 잠자는 시간은 길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까지의 시간이 줄었다. 컴퓨터로 비유하면, 윈도우 부팅 시간이 빨라졌다.
2. 자세가 좋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적으로 고쳐 앉게 된다. 그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전보다 빠르게 감지하고 '이러면 안 돼.'라고 스스로를 일깨우게 된다. 그리고 허리를 다시 세우고 가슴을 열고 턱을 당겨 목을 뒤로 집어넣는다. 당신이 방금 했던 것처럼, 그렇게.
3. 영영 사라진 줄 알았던 근육이 돌아왔다. 전문 용어로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라고 한다더라. 10년 전, 군대 훈련소에서 만들어준 근육이 운동을 할수록 조금씩 돌아왔다. 나조차 잊고 있던 예전 기억이 몸 어딘가에 새겨져 있어서, 그것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 감각은 한 편의 영화처럼 감동적이다.
4. 작은 성취를 느낀다. 그동안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운동은 변화가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몸으로 느껴진다.
5. 스트레스가 풀린다. 예전에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질렀더랬다. 요즘은 샌드백을 때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갇힌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그동안 모아둔 좌절감과 울분, 불안과 분노를 샌드백에 담아두고 마음껏 친다.
6. 마음도 단단해진다. 몸이 좋아질수록 정신이 맑아진다는 걸 체험했다. 아마 운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유물론자가 되지 않을까. 평소에 운동을 하면 심장이 뛰는 일에 덜 민감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사고가 터지거나 위기 상황이 생겨도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운동을 시작하고 달라진 것들은 위와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엔 아직 내가 모르는 즐거운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올해는 내가 모르는 즐거움을 더 많이 알고 쌓아나가야지, 라고 생각하면 세상은 좀 더 밝아진다. 그것은 땀을 흘리고 겨울바람을 맞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