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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Jul 30. 2019

삶의 선택에 꼭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한가요

'왜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어요?'


최근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나는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질문들이 이어졌다. '왜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갔나요? 왜 뮤직비디오 촬영보조를 했죠? 그런데 왜 마케터가 되기로 했나요? 왜 스타트업을 첫 직장으로 선택했나요?'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명확한 대답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힘이 들었다. 결국 몇 가지 질문에는 얼버무리듯이 대답했다. 상대방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는 진이 빠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질문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했던 몇몇 대답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내가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한 것도 큰 이유가 없었다.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지원한 게 아니다.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아버지는 취직이 잘되는 경영학과에 가길 바랬다. 그 절충안으로 카메라도 만지고 취직도 잘 되는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했다. 예상과 다르게, 신문방송학과는 카메라를 만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학, 심리학, 조직 경영학,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었다.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취직과는 상관없이, 얇고 깊은 지식을 쌓는 일이 즐거웠다.


교환학생을 간 계기도 딱히 없다. 그저 취직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친구들처럼 자격증을 따거나 인턴십을 하기 싫어서(사실은 두려워서) 가장 편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싱가포르였던 이유는 대학 순위가 높고 영어를 쓰며, 무엇보다 인종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싱가포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다. 신중하지 않은 선택에 후회했을까. 아니다. 싱가포르에 머물렀던 시간은 내게 큰 변화를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넓은 세계와 자신감과 좌절을 경험했다.


교환학생 때 SNS 마케팅 수업을 들었다. 과제로 나의 팀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 삼백 명 정도의 팔로워를 겨우 모았다. 나는 페이지에 올릴 콘텐츠를 촬영하고 편집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즐거웠다. 이때 두 가지를 희망하게 됐다. 첫째는 퀄리티 높은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둘째는 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얻고 싶다. 그냥 막연하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꿈이라기보다, 아쉬움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에 가까웠다.


귀국하자마자 뮤직비디오 촬영보조 일을 했다. 무언가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장은 내 상상과 달랐다. 창의성보다는 인내심을 요구했다. 기획력과 기술보다는 힘과 눈치를 요구했다. 나는 힘은 있었다. 눈치는 없었다. 촬영 현장에는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이 있었다. 목표로 삼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회의감이 들었다. 촬영이 시작되면 스태프들은 하루 종일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감독만이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순진하게도, 앉아서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몸이 아니라 머리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마케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반응을 얻고 싶다는 두 번째 희망 때문이었다. 마케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막연히 광고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순진하고 멍청했다. 우연히 인턴십 프로그램의 기회가 생겼고, 가장 마음에 드는 회사를 선택했다. 무엇보다도 서비스가 인상 깊었다. 디자인이 예쁘거나 사용자가 많은 건 아니었다. 다만 사용자들의 애정과 충성도가 느껴지는 서비스였다. 게다가 여행 서비스를 마케팅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니까. 나는 교환학생 말고는 여행을 해본 적도 없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스타트업에서 처음 느낀 점은 나의 부족함이었다. 오만함이었다. 또래의 동료들은 이미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1인분 이상의 업무를 해내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각자가 맡은 전문 분야가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들로부터 배우고 싶었다. 두 가지 감정이 공존했다.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와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다'. 동료들의 모든 피드백과 회의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매일 퇴근하기 전에 회고록을 적었다. <그로스 해킹>을 읽으며 마케팅에 대한 편견을 깼다. 훌륭한 브랜드를 거꾸로 파헤쳐가며 브랜딩을 배웠다. 주로 에어비앤비, 배달의민족 같은 브랜드였다. 모든 훌륭한 브랜드는 훌륭한 조직문화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직문화에 관한 책과 아티클을 읽으며 배웠다. 처음에 예상했던 업무는 아니었다. 그러나 즐거웠다.


내게 일은 배움이다. 나는 배우는 것이 즐겁고, 배움의 결과보다 과정 즐긴다. 내게 일은 경험이다. 커리어는 쌓는 것이 아니라, 넓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경험은 내가 정합적인 근거로 선택한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경험이 나를 선택해왔다. 그것은 개인적인 체험과 감각의 영역에서 얻은 결론이다. 언어로 설명해봤자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뿐더러, 나조차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삶의 선택이 정합성 있게 진행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회의 요구'와 '결핍이 이끄는 욕구'간의 결투에 가까웠다. 경영학과와 영화학과가 싸워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다. 취업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싸워 교환학생을 선택했다. 영상을 잘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나를 뮤직비디오 촬영보조로 이끌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는 욕구는 나를 마케팅으로 이끌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싶다는 욕구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나는 안정적인 삶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시도하고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져놓고자 한다. 과거의 일을 이제야 해석해냈던 것처럼,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를 움직인 요인을 관망할 수 있을 테다.


삶의 선택에 꼭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할까. 내가 어떤 기대를 하건 간에 현실은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 힘들다. 모든 경험이 나에게 교훈을 주었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러니 나는 내 선택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기보다, 결핍이 이끄는 욕구와 떠오르는 감정과 직감을 근거로 삼고자 한다. 우연을 믿지 않는 운명론이나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는 불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있으며, 이성에 입각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이는 올바르게 선택할 수 없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믿음은 어딘지 오만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란 감정을 먼저 떠올리고 사후에 이유를 붙이는 존재가 아니던가.


이것은 나의 미래에 대한 '왜'라는 수많은 질문을 견디며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나의 삶은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긴 어려워 보인다. 위인전이나 평전 따위는 내놓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실속 없고 철없는 원칙을 고수하고 싶다. 미래를 위한 합리적이고 계획된 길을 걷기보다는 앞으로도 현재에 마음이 이끄는 선택을 따르고 싶다. 나의 행복은 계획에서 오지 않고, 내가 누린 행복은 우연한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나왔다. 나는 언제나 이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


왜요!, 왜요! 그가 못마땅하듯이 소리쳤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자, 날 데려가 쇼....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닙니까?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친구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 버리는 거요.

-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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