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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r 18. 2019

나는 부모의 외로움을 모른다

아니, 실은 외면하고 있다

1

언젠가 누가 물었다. '아버지'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냐고. 나는 대답했다. '안쓰럽다'라고.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 '어머니'하면 어떤 느낌이냐고. 이번에는 조금 더 고민한 뒤에 대답했다. '안쓰럽다'라고.



2

아버지 안색이 부쩍 나빠졌다. 입 주변이 부르트고 몸에는 뻘건 염증이 생겼다. '며칠 잠을 못 잤더니 이래.'라며 앓는 소리를 하셨다. 퇴직을 내년에 앞둔 당신은, 회사에 가기 싫다며 멋없는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당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조금 더 본인들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는데도, 그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반면에 나는 어떠한가.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배우고 싶으며,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안다. 혼자 있어도 온갖 재밌는 것에 몰두하며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다. 나는 외로움을 모른다. 나는 소중한 것을 천천히 보내는 허무함을 모른다. 나는 부모의 외로움을 모른다.



3

어릴 적엔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운이 좋게도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자기 성찰과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학업에 열중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자식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중요성을 말해주지 않음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은퇴가 가까운, 곧 자유로워지는 부모들을 보며 고민해본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몰랐던 건 아닐까 하고. 그들 자신도 이제야 깨닫게 된 건 아닐까 하고.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가 가까워지는 동시에, 너무나 크고 공허한 시간을 계획 없이 마주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얘야, 너무 서두르지 말고. 너무 걱정도 하지 말고. 남들도 신경 쓰지 말고. 너는 너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이제는 이렇게 말하는 부모는 어쩌면, 이전엔 몰랐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건 아닐까 하고.



4

아버지가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이번엔 꽤 오랜 일정이었다. 문득 문자를 보내오셨다. 잘 도착했노라고. 내게 어떤 말을 기대하시는 걸까. 망설이다가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무뚝뚝한 문장으로 어색한 커뮤니케이션을 끝낸다. 그렇게 긴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살갑게 대답하는 법을 모른다.


나는 부모의 외로움을 모른다.

아니, 실은 외면하고 있었다.



5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 룽잉타이 <눈으로 하는 작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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