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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r 23. 2019

글 쓰는 원칙 ; 간결성

기자와 시인에게 배운 글쓰기 원칙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보다 솔직담백한 두부백반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심심풀이 팝콘 같은 글보다 며칠이고 몇 년이고 마음에 두었다가 이따금씩 꺼내 읽는 글을 쓰고 싶다. 겉만 화려하게 꾸며서 속은 비어있는 글보다 투박해 보여도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글을 쓰고 싶다. 시선을 확 채는 글보다 그 의미를 몇 번이고 곱씹어 보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원칙을 세웠다. 제1의 원칙은 ‘간결성’이다. 나는 기자와 시인에게 글을 배웠다. 그들은 한결같이 ‘문장의 간결성’을 강조했다. 내가 쓴 글은 만연하고 호흡이 길어서 읽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간결한 문장’이란 결벽증 환자의 방 같아서, '이렇게까지 멋없게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 무미건조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기자나 시인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최근에 깨달았다. 글은 읽기 쉬워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은 간결해야 한다. 언어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우연히 읽은 이낙연 총리의 사설이 글에 대한 의식을 환기했다. 그의 사설은 내가 쓰고 싶었던 ‘좋은 글’이었다. 그리고 간결했다. 나는 이 사설을 나의 글쓰기 참고서로 삼게 되었다.



글을 간결하게 쓰면, 무엇보다 가독성이 좋아진다. 주어와 술어 사이가 길수록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선수가 인터뷰할 때를 떠올려보자. '-하고', '-했기 때문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런 말버릇은 여러 문장을 긴 호흡으로 늘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호흡이 짧고 간결할수록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글에 리듬감이 생긴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두 가지 리듬감을 느낀다. '시각적 리듬감'과 '청각적 리듬감'이다. 온점을 찍으면 문장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쉼표가 보이면 머릿속으로 을 들이쉰다. 이런 리듬감은 글을 읽는 재미와 몰입감을 준다. 텍스트 읽는 행위가 'Seeing'가 아닌 'Reading'의 영역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A. 나는 사방에서 매미들이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칠 정도로 목청을 다해서 발악적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오솔길을 혼자 쓸쓸히 걷고 있었다.
B. 나는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혼자였다. 오솔길은 비좁아 보였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발악적이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소설가 이외수는 『글쓰기의 공중부양』에서 이런 예시를 든다. A는 한 문장, B는 일곱 문장이다. 메시지는 동일하다. 무엇이 더 잘 읽히는가. 무엇이 더 리듬감 있게 읽히는가. 나는 단연 B라고 생각한다.


문장을 간결하게 쓰기 위해 네 가지 원칙을 세웠다. 나는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비록 부족한 글이 나올지언정, 읽지 못하는 글은 나오지 않는다.

문장을 간결하게 쓰는 원칙

1.  되도록 짧게 쓴다.
2.  없어도 의미 전달이 된다면 없앤다.
3.  같은 내용이라면 더 적은 글자 수로 표현하는 게 낫다.
4.  소리 내어 읽을 때 걸리지 않아야 한다.


'간결해야 더 좋은 글이다. 모든 문장은 짧게 써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문장이 길어도 쉽게 읽히는 글이 있다. 이 글의 첫 문단이 그렇다. 한국 근대소설에서는 만연체 문장을 문학적 장치로서 자주 사용했다.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도 대게 긴 문장을 선호한다. 필력이 뛰어난 작가의 글은 문장의 길이와 상관없이 몰입이 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글이란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고, 좋은 글은 그 목적을 온전히 수행하는 데 있다'라고. 그래서 겉으로는 무미건조하고 진중해 보여도, 꾸밈도 과장도 없는 간결한 글에 마음이 끌린다. 고유의 맛을 가리지 않는 솔직담백한 두부백반 같은 글.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다. 나는 그런 글을 닮으려고 한다.



"말과 글은 알기 쉬워야 하며, 그러려면 평범하고 명료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겼다. 김중배 편집국장은 논어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가르쳐 주셨다. 꾸미지 말고 있는 대로 쓰라는 뜻으로 들었다. 이것을 나는 지금도 훈련한다."


- 이낙연 국무총리, "기자생활 21년, 내면 형성한 소중한 수업 기간이었다." 사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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