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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May 12. 2022

명랑한 사람


나는 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지내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건 '명랑함'인 것 같다. 중학생 무렵부터 애늙은이 같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친구들에 비해 말수가 적고 냉소적이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도 서툴렀다. 아픈 상처로 인해 철이 너무 빨리 들었던 탓이다. 그러니까, 내가 명랑함을 갖고 있던 시기는 남들보다 무척 짧았던 것 같다.


명랑한 사람을 만나면 신비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명랑한 사람은 주변에 즐거워할 만한 일들이 넘친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에너지가 흐른다. 목소리 톤이 높고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며 무엇보다도 리액션이 크다. 내게는 그저 그런 시시한 사건들도 그들에게는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분명 나와 같은 세계에 서 있는데도, 내가 고통과 권태를 오락가락하는 동안, 그들은 그 속에서 즐거울 수 있는 이유를 쉽게 찾아낸다. 


나는 명랑한 마음이 들어오려고 할 때면 문을 꼭 잠가 두었다. 이토록 고통스럽고 난폭한 세상에서 명랑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어쩐지 죄스럽게 생각되었다. 아니, 어쩌면 부드럽고 연약한 내 속마음을 남들 앞에 드러내는 일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를 모자라고 어설픈 인간으로 생각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막상 나는 명랑한 사람을 그렇게 바라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한편으로는 존경심마저 가졌던 것이다.


내가 다시 명랑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그들을 닮고 싶다고 나는 자주 생각한다. 어느 책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세계는 결국 사람들의 정신에 나타난 세계다. 마음의 상태나 마음의 수준에 따라서 우리는 그때마다 다른 세계에 산다.' 내가 명랑한 세계에서 살아갈 수는 없더라도, 가끔 여행 정도는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잠시라도 내 안에서 명랑함을 발견하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소망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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