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Jun 02. 2022

여름은 다짐이 된다


1

여름은 언제나 부지런한 계절이었다. 올해도 짙은 풀내음과 함께 이른 손님처럼 찾아왔다.


우리는 언제 여름이 왔다는 걸 직감하는가. 사람마다 분명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개울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을 발견할 때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게다가 여름 햇살 아래에서는 모든 사물이 되살아났다. 삶이 무료하고 일상이 무채색인 것만 같다던 나의 생각을 꾸짖기라도 하듯, 여름은 싱그럽게 살아 움직이는 세상을 내게 드러낸다. 그리고 여름은 뜨거운 매미 소리와 함께 떠나간다. 


이번 여름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유난히 반갑다. 지난여름은 온전히 여름답게 보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토록 좋아하는 바다에도 가지 못했다. 골목에 늘어선 간이 탁자에서 시원한 생맥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수박도 콩국수도 먹지 못했다. 이 정도면 내게 주어진 몇 개의 여름을 너무 쉽게 놓쳐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올해에는 여름을 고스란히 즐겨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마저 드는 것이다. 그렇게 다가올 여름은 다짐이 된다.


2

멀리 놓인 산을 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바다 같다. 나무는 종류에 따라 제각기 다른 속도로 흔들린다. 이파리는 파도처럼 쏴아아 소리를 내며 울렁거린다. 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 푸른빛의 흔들림을 자꾸만 보고 있으면 나는 영원을 믿게 된다. 내가 살아왔던 세상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저 풍경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된다. 영원히 머물고, 영원히 흔들리는 자연 앞에서 나는 보잘것없이 초라해진다. 그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방식인 것 같다. 나의 존재, 그리고 내가 끌어안고 있는 모든 짐들이 너무나 작고 잠시뿐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3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 중에서





제가 쓴 에세이와 글, 음악 추천을 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뉴스레터를 구독해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명랑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