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용 Jun 04. 2022

이불 정리에 대하여


살아가다 보면, 내게는 당연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최근에 발견한 것은 이불 정리에 관한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이불을 정리한다. 일종의 강박처럼 이불을 갠다. 나는 특별히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게으른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나는 자동 기계처럼 이불을 정리해왔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마다 이불을 갠다고 한다. 어느 자기 계발서에서 읽었다. 그런데 정말일까? 솔직히 설득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생이 실패하고 있다고 느낄 때의 나는 아침에 이불을 정리하지 않았다. 몸이 아프거나 온종일 우울하거나 전 날 마신 술로 숙취가 심할 때도 이불을 개지 않았다. 지각으로 미처 이불을 정리하지 않은 채 출근길에 오르면, 무언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의 마음 가짐과 이불 정리가 어떠한 연관이 있는 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이불 정리는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작은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은 현대미술의 설치작품처럼 아무렇게나 너질러져 있다. 그렇게 두어도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고 내 삶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불 양끝 손으로 붙잡고 힘껏 펼친 후 군데군데 주름이 접힌 부분을 다듬어주면 침대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말끔해진다. 그리고 이상스레 마음이 말끔해진다. 그것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다. 물론 매우 작고 소소한 단위지만 분명 무질서로 나아가는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일이다. 미시세계가 거시 세계를 구성하듯, 우리는 이불을 개는 행위를 통해 우리 삶을 지배하는 하나의 원칙을 체험하게 된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너무 비약적인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내 생각에도 그렇다. 하지만 이불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인생이란 건 추상적인 개념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제멋대로 구겨져 있더라도 기분으로만 더듬더듬 느낄 뿐이다.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불을 마치 내 삶의 모양인 것처럼 여겨왔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어질러진 이불은 가만히 둘 수가 없다. 먼지를 털어내고 최대한 깔끔하게 선을 맞추고 멀끔하게 매만져야 한다. 그렇게 반듯하게 정리된 이불은 오늘 하루도 평온하게, 내가 바라는 대로 지나갈 것이라는 암시가 되었다.




제가 쓴 에세이와 글, 음악 추천을 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뉴스레터를 구독해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은 다짐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